짙은 색채에 신앙을 담다
v ① 이콘, 그 신비의 세계로
② 러시아 이콘
③ 그리스 이콘
④ 이콘을 배우고 싶다면
오랜 시간·문화차 딛고 현대까지 발전
교회 예술영역 넘어 신학적 가르침 줘
종교는 오래 전부터 예술작품의 좋은 소재가 돼왔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그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그랬다. 하지만 종교만을 위해 존재하는 예술은 많지 않다. 때문에 예수와 성모마리아를 비롯해 성경의 특별한 내용, 교회사의 중요사건만을 소재로 하는 이콘(Icon)은 특별하다. 이콘은 예술이라기보다 ‘신앙의 표현’이라고 설명하는 편이 나을지 모르겠다.
최근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각광받고 있는 이콘. 10월 한 달간 이콘이 지닌 신비한 매력에 빠져보자.
# 이콘의 역사
이콘은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그리스도교 문화가 통합되어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 예술은 비잔틴의 영향을 받았으며 슬라브 예술은 비잔틴의 도움 없이 조화로운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이콘 예술의 정신과 기술은 국경을 넘나들며 발전해 왔다.
이콘의 기원은 명확하게 알 수 없다. 전문가들은 3~4세기부터 이콘이 그려지기 시작했다고 추정하지만 초대교회는 매우 이른 시기부터 이콘을 부분적으로 활용돼왔다. 물고기, 십자가, 양 등 초기 그리스도교 지하묘지인 카타콤바에서 발견된 상징물들이 이를 입증한다.
체사레아의 에우세비오(260/265?~339)는 저서 ‘교회사’에서 “나는 우리 시대까지 보존되어 온 구세주의 초상화와 베드로와 바오로의 초상화를 매우 많이 보았다”라고 언급해 교회가 초기부터 이콘을 받아들였음을 알려준다.
초기 이콘 작품들은 매우 영적인 내용으로 그려졌다고 알려져 있으나 아쉽게도 지금까지 남아있는 작품이 없어 확인할 수는 없다. 대신 1~2세기에 제작된 카타콤바의 천장과 벽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신·구약성경과 교부들의 가르침을 통해 신자들이 박해시대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후기에 나타나는 성인들의 초상은 그 모델과 유사하게 그려 보존하려고 했으며 이는 초상화의 기초가 됐다. 성인과 순교자들의 초상으로 그려졌던 이콘은 6세기부터 예배에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들고 다닐 수 있는 나무 이콘은 성물의 의미를 뛰어 넘어 세속적 표현이 더해지면서 성화상 논쟁(8~9세기 비잔티움 제국 안에서 성화상 공경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되기도 했다.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분열로 종교미술은 판이하게 다른 길을 걷게 된다. 표현의 자유를 받아들인 서방교회는 실질적이고 사실주의적인 입장에서 예술을 수용했다. 그러나 동방교회에서는 보다 철저한 규정들 아래 정형화된 예술로 자리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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