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은행, 00-000-000000-0, 이종민입니다.”
저는 제 은행 계좌번호를 외우지 못합니다. 계좌번호를 알려 주어야 할 일이 있을 때면 늘 통장을 펼쳐보면서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런 제 모습을 바라보던 한 선배 신부님이“군종신부는 자기 계좌번호를 잘 외우고 있어야 한다”고 반 농담 삼아 말씀하셨습니다.
군인성당은 재정이 열악하기 때문에 후원자가 생겼을 때 두말 않고 감사히 받아두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지 병사들에게 간식하나라도 더 챙겨줄 수 있다고 의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게 지금의 인연을 주시려고 하셨는지 저는, 현재 제가 사목하고 있는 열쇠본당의 초대신부님 밑에서 보좌신부생활을 했습니다. 그때 신부님께서는 한 은인의 도움으로 열쇠성당을 지으셨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군종신부를 시작하면서 지금의 열쇠본당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열쇠성당 뒤쪽 벽에 그 은인의 사진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누군지 모를 그분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분의 희사로 지난 30년간 열쇠본당은 장병들의 신앙생활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바로 지난 주일에 우리 성당은 설립 30주년 행사를 했습니다. 행사를 준비하면 그분의 도움도 다시 떠올렸습니다.
주일날 오후면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있는 전방 공소로 미사를 갑니다. 그 공소에는 철책근무를 서는 병사들 중 열다섯 명 정도가 나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딱 한명만이 미사에 나온 적이 있습니다. 신자이면서도 주일미사를 빠지는 병사들을 생각하면 한심한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 얼마나 피곤하면 그럴까 하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군종신부 생활을 시작하면서 한 다짐이 생각났습니다. 단 한명이라도 나를 기다리고 미사하기를 고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찾아가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한명의 병사를 앉혀두고 미사를 봉헌 한 후, 그 병사에게 오늘을 내 영광의 날로 생각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군종신부를 시작하면서 단 한 명이라도 미사하기를 고대하는 병사가 있다면 찾아가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오늘이 바로 그 날이 된 것 같다. 너와 함께 했던 이 미사, 그리고 오늘을 내 영광의 날로 생각하겠다.”
두 개의 검문소를 거쳐 들어가는 그 공소 지역의 풍경은 병풍처럼 산들로 둘러쳐져있습니다. 민간인 손님들을 안내해서 들어가면 그 자연풍광에 감탄하며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 안의 안내판에는 ‘입산금지’, ‘산불조심’이라는 표지판 대신, ‘지뢰지대’, ‘위험지역’이라는 표지판들이 있고 철책이 있습니다. 최전방 철책에서 근무를 서는 병사들은 참으로 피곤합니다.
이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나라를 지키는 큰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국군 장병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군인주일입니다. 한국 교회는 1968년부터 10월의 첫 주일을 군인주일로 지내면서 군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특별 헌금을 해왔습니다. 군인주일이 되면, 군종신부님이나 군인 신자들이 민간본당으로 모금을 나갑니다. 교회의 전 신자들에게 국군 장병들의 은인이 되어주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아무 인연이 없고 알지 못하는 군인들이 여러분의 관심과 도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관심과 도움은 알지 못하는 이와 나를 연결해 주는 보이지 않는 끈이 되고 힘을 주는 통로가 됩니다. 늘 그랬듯이 이번 군인주일에도 우리 국군장병들이 있음을 기억해 주십시오.
이종민 신부(군종교구 열쇠본당 주임)
군복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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