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열린 자세로 주님께 여쭤라
우리는 자신만 위해 기도하는 경우 많아
하느님 향해 깊은 내면의 갈망 드러내야
인간은 역동적인 에너지들을 가지고 있다. 사회역사적 차원에서는 ‘추동들’(Pulsations)이고, 신체적 차원에서는 ‘충동들’(Pulsions), 역할적 차원에서는 ‘열망들’(Ambitions)이며, 초월적 차원에서는 ‘갈망들’(Aspirations)과 ‘영감들’(Inspirations)이다.
여기서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갈망과 영감의 에너지를 계속 써야 한다. 나의 정신과 육신만 가지고는 늘 부족할 따름이다. 충동과 격동, 강박, 열망 등으로는 하느님께 진정으로 다가가기 어렵다. 초월적 차원에서 늘 당신의 뜻이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묻고 들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갈망과 영감들이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주로 “사업이 잘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
고3 자녀를 둔 부모는 “아이가 일류 대학에 합격하도록 해 주세요”라고 절절하게 기도한다. 어떤 부모는 “우리 아이가 꼭 의사가 될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할 수 있다. 이것은 모두 앞서 말한 육신과 정신적 차원에서 나오는 것들, 즉 충동과 격동, 강박, 열망에 의한 기도들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하느님 제가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이 사업이 당신의 뜻에 드는, 당신의 마음에 드는 일이 될 수 있게 도와 주십시오” “저의 자녀가 당신의 뜻에 맞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하느님, 우리 아이가 의사가 되려고 합니다. 당신은 이 아이가 의사가 되는 것을 원하십니까?” 이것이 바로 갈망의 에너지에서 나오는 기도들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기도할 때 자신이 미리 할 것과 하고 싶은 것, 예상하는 것을 정해 놓고 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는 하느님께 의탁한다 하지만, 사실은 정신 속에 온통 자기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육신과 정신만 있지, 진정한 영적 초월이 없다.
형성하는 신적 신비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가 알 도리가 없다. 우리는 그만큼 나약하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열린 자세로, 그분께 여쭈어야 한다.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그 묻도록 하는 에너지가 이미 우리 속에 내재해 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이미 초월적으로 형성하도록 심어 놓으신 갈망과 영감의 영적 에너지인 것이다.
그분께 계속해서 묻는 갈망을 보내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하느님으로부터 영감을 받게 된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읽어낼 수 있다. 정신보다 조금 더 깊은 초월적 차원의 갈망을 드러내면 우리는 또한 진정으로 조금 더 깊은 차원의 영감을 받을 수 있다.
그럼 이 갈망은 얼마나 자주 일어나야 할까.
매순간, 매순간이 갈망이어야 한다. 우리는 늘 내 생각 중심으로, 내 육신 중심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래서는 진정으로 하느님께 다가갈 수 없고, 하느님을 알 수 없다. 나 중심으로 생각하기에 남을 미워하게 되고, 나 중심으로 생각하기에 남을 비판하고 재단하고, 평가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게 된다. 우리는 늘 하느님을 향한 보다 깊은 내면의 갈망을 드러내야 한다. 이 글을 읽는 이 순간에도, 밥을 법을 때에도 갈망을 드러내야 한다.
밥을 먹는 것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늘 나 중심으로 밥을 먹는다. 신앙인이라면 이래서는 안 된다. 내가 밥을 먹는 것이 과연 당신의 뜻에 맞게 먹고 있는 것인지, 또 당신 뜻에 맞게 밥을 먹으려면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를 묵상해야 한다.
하느님께만 ‘일용할 양식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해서는 안 된다.
농부를 비롯해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신 모든 이들과 자신의 현 상황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양말을 신을 때도 양말 빨래를 해준 이에게 감사해야 한다.
매사가 갈망의 시간이어야 한다. 이렇게 살지 않으면 우리는 비본래적인 인간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렇게 살지 않으면 우리들의 삶의 형태는 다람쥐 같이 일상화되어진 삶의 틀 속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된다. 결국 영적인 삶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된다.
심지어 종교인들도 영적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서로의 종교를 비방하고, 신자들을 잘못 인도해서 재물이나 탐하곤 한다.
모두가 헛사는 것이다. 헛것 따라서 사는 이들이다. 진정으로 하느님께 매사를 물어보면서, 갈망의 에너지를 하느님께 보내면서, 하느님으로 부터 영감의 에너지를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있는가.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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