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결실의 계절이다.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땅 위에 돋게 하여라.”(창세 1, 11) 하신 말씀대로, 생명이 약동하던 지난봄부터 이 가을까지 “땅의 귀한 소출을 기다리는 농부를 보십시오. 그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맞아 곡식이 익을 때까지 참고 기다립니다.”(야고 5, 7) 그리고 드디어 결실의 기쁨을 안고 삶에 대한 감동과 보람에 젖어든다.
그러나 이런 결실의 기쁨도 뒤로 한 채, 요즈음 유명 연예인들의 잇단 죽음(자살)에 관한 소식이 이슈(issue)가 되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한 인간으로서의 고유하고 진솔한 삶보다는 드러나는 모습에 더 치중해야 했던 그들의 내면적 고통까지 묻혀 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끝까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스스로 인생을 마감하는 끔찍한 비극이 많은 이들에게 정신적 혼란을 주고 있다.
지금 사회 일각에서는 이런 일련의 일들과 결부지어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를 우려하고 있다. 1974년에 미국의 사회학자 필립스(David Phillips)는 1947년부터 1968년 사이에 유명인의 자살 사건을 조사한 결과, 언론에 보도된 후 2개월간 자살률이 급증했던 연구결과를 토대로 하여 어느 개인 자신이 모델로 삼거나 존경하던 인물이나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살을 모방하는 현상을‘베르테르 효과’라고 이름 지었다. 이 말은 1774년에 출간한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에서 착안했다. 당시에 괴테는 자신의 실연체험과 절친한 친구의 자살을 바탕으로, 당시의 인습체제와 귀족지배에 반항하는 젊은 지식인의 열정과 좌절을 그려냈다. 그러나 문제는 작품이 유명해지면서 시대와의 단절로 고민하는 베르테르의 모습에 공감한 젊은 세대의 자살이 유행처럼 번져 나갔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상을 보면서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인 신앙인들이 다시금 가다듬고 정립해야 할 삶과 신앙의 자세를 성찰하게 된다. 신앙인의 삶의 근거는 생명을 주시고 삶을 이끌어 주시는 사랑의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다. 그리고 이 믿음은 하느님 사랑의 가장 완전한 결정체이신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열매 맺는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길(마르 12, 30∼31), 생명의 길(요한 3, 16∼17), 용서의 길(루가 23, 34), 십자가의 길(마태 10, 38)을 보여주셨다. 따라서 신앙인의 정체성은 예수님께서 걸으신 삶의 길을 본받고 따름에 있다. 여기에서의 온전한 ‘따름’이 바로 하느님께서 선사하신 ‘예수 효과’이다. 곧 신앙인은 ‘예수 효과’로 사는 사람이다. 누구나 예외 없이 한 두 번쯤은 인생의 큰 어려움을 맛보게 되는 게 삶이다. 그러나 신앙인은 고난과 좌절 가운데서도 희망을 간직할 수 있다. 신앙인이 가진 ‘예수 효과’ 때문에 그렇다. 비현실적인 허상을 나의 것인 양 기대하다가 절망하고, 남들도 그런다고 모방하고 포기하는 삶이 아니다. 하느님께 받은 삶과 일과 봉사를 소명으로 깨달아 살아가는 삶, 하느님께서 나를 나의 인생과 가족과 삶의 자리에 보내신 선택된 그분의 자녀임을 깊이 묵상하고, 그분의 사랑을 관상하며 사는 삶이라야 마지막까지 아름다울 것이다.
이제 신앙생활에서 ‘예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나의 기도생활부터 개선해 보자. 내 생각과 지향만으로 기도하려 한다면 일방통행일 뿐, 소통이 막힌 채 예수님과의 참다운 만남이 되지 못한다. 현실적인 바람과 청원을 넘어 말씀 안에 살아계시는 예수님을 날마다 만나고 대화하며, 그분의 사랑을 느끼고 바라보는 영적 생활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언제나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을 온전히 닮고 따르며(에페 5, 2) 또 그렇게 살아가는 구원에 머물게 된다.(요한 4, 40∼41) 이것이 내적 인간(에페 4, 16)인 신앙인이 맺을 열매(갈라 5, 22∼23)이며, 무엇에 비길 수 없는 기쁨으로 거둘 진정한 삶의 결실이다.
“나는 이미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필립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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