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영성적 삶은 ‘내면 분석’서 출발
평소 내면 깨닫지 못한다면 정신·마음 병들어
나 자신 생성까지의 삶-생명부터 살펴보아야
이번 주부터 우리는 영성적 삶으로의 초대 3단계, ‘삶-생명에 귀 기울이기’ 프로그램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1단계에서 우리 자신이 과연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존재인지, 우리의 원천에 대해 공부했다. 그리고 2단계 프로그램에서는 우리 자신을 열자고 했다. 우리의 좁은 사고에 갇혀 있어서는 형성하는 신적 신비에로 다가갈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을 열 준비가 된 사람만이 갈망과 열망들을 통해 초월의 단계에로 나갈 수 있다. 정신을 열고, 마음을 열게 되면 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좁은 정신이 아닌 넓은 정신으로 그리고 또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살아가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는 무엇보다도, 근본적으로 중요한 관계이지만 다른 영역들(사회·역사적 차원-타인들·만물)도 함께 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의 눈은 세상을 보게 된다. 보고 싶지 않아도 보아야 한다. 그냥 보인다. 산이 보이고 꽃이 보이고, 건물도 보인다.
출퇴근을 하다보면 복잡한 인간 군상들을 수없이 만나게 된다. 복잡한 지하철도 타야 하고, 신문도 보아야 한다. 싫든 좋든 나는 이런 눈에 보이는 것들을 받아들인다.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만 볼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내면을 보아야 한다. 세상이 자연스럽게 보이듯이 그렇게 나 자신의 내면도 보아야 한다. 눈은 열려있다. 내면을 보는 눈도 그렇게 열려 있어야 한다.
40대 중반의 어떤 남자가 몸이 불편해 병원에 갔다. 병원에선 간암 3기라고 했다. 이 남자는 자신의 장기가 망가지고 있는 것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물질적 차원의 몸속도 들여다 보지 못하는데 내면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배가 아프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전날 과음으로 속이 쓰린지, 아니면 맹장염 때문인지, 소화가 잘 되지 않는지 그 원인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있다. 위가 나쁜 사람이 입에 당긴다고 해서 아무 음식이나 먹었다가는 반드시 탈이 나게 마련이다. 간이 나쁜데도 매일 술을 마신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처럼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알지 못하면 중병에 이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내면을 평소에 살피지 않는다면, 외적인 것에 정신을 빼앗겨 살아간다면, 그저 그렇게 아무 의식 없이 살아간다면 나의 내면인 정신과 마음은 중병에 걸릴 수 있다. 정신에는 좋은 내용이 담길 수도 있고 나쁜 내용이 담길 수도 있다. 좋은 것에서는 좋은 것이 나쁜 것에서는 나쁜 것이 나온다.
아름다운 성전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성전의 화려함과 장중함, 엄숙함에 반할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외형적 아름다움에 정신과 마음을 빼앗길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성전이 지어지기까지의 복잡한 과정을 알지 못한다. 아름다운 설계도가 있다고 해서 성전이 저절로 지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성전이 지역 시장 상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행인들에게 불편함을 주는지 아닌지 등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철근 콘크리트로 지을지, 벽돌로 지을지 고민도 해야 한다. 철근과 시멘트를 어느 정도 사용할지, 성물의 재료는 무엇을 사용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 만들어진 것이 지금 우리 눈 앞에 있는 성전이다.
마찬가지로 나 자신도 오늘날 나의 모습을 지니기까지 수많은 단계가 있었다. 나는 어느날 갑자기 지금의 모습으로 ‘짠’하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나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부터, 수없이 읽었던 책과, 수많은 이들과 나눴던 대화들이 모두 얽혀 지금의 나의 모습을 만들고 있다. 부모와 친구, 스승과 제자들이 모두 지금 나의 모습에 깊은 영향을 준 것이다.
아름다운 성전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내면을 아름답게 꾸미고 싶다면, 그 과정을 아름답게 해야 한다. 만약 과거의 과정이 아름답지 않다면 아름답게 치유해야 한다. 물론 그 도움은 형성하는 신적 신비로부터 받을 수 있다.
진정한 영성적 삶을 위해선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진 나 자신의 내면을 잘 분석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 없이, 잘못된 영성 지도를 받게 되면 잘못된 길로 빠질 수도 있다. 진정한 영성적 삶은 이러한 나의 내면 분석에서부터 출발한다. 그 내면 분석의 첫 단추가 바로 지난 과거에 무수한 사건 속에서 살아왔던 삶-생명에 귀를 기울이는 작업이다.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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