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이 세상 하나뿐인 내 사람아.”
남편의 목멘 부름에도 아내는 대답이 없다. 초점없는 시선만이 허공을 향할 뿐이다.
뇌손상으로 인한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는 아내 이미숙(안나·35·서울 천호동본당)씨. 사지마비로 산송장이 된 지 3년이 넘었다. 시력은 0. 맑은 두 눈에 아무것도 담지 못한다. 청력이 살아있는지도 의심스럽다. 그래도 남편 송경호(요아킴·35)씨는 희망을 움켜쥔다. 하얀 미소가 벚꽃 같았다며 일그러진 얼굴을 맞부빈다.
온라인 음악 동호회에서 만나 단꿈을 꿨다. 세상이 음악처럼 아름다웠다. 모든 일이 술술 풀렸다. 직원 3~4명을 거느리고 에어컨 설치공사를 하며 목돈도 만졌다. 예쁜 아기도 낳고 성당에도 나가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아내는 모든 꿈과 함께 결혼 1년 반만에 쓰러졌다. 갑작스런 사업 실패와 자궁외 임신으로 인한 유산의 충격이었다. 금방 일어날 줄 알았던 아내는 끝내 일어나지 못했고 병세는 깊어만 갔다. 사지마비는 오장육부까지 미쳐 심장마비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 고열과 다한증에 시달렸다. 욕창으로 꼬리뼈가 다 드러났다.
처가에서는 희망이 없다며 사위에게 재가를 권했다. 말을 안 듣자 몰래 딸을 보쌈해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일을 마치고 아내가 있는 병원으로 돌아온 남편은 비어있는 병실을 보고 눈이 뒤집혔다. 열일을 제치고 아내를 찾아 백방으로 뛰었다. 결국 한 달 만에 서울 로뎀병원에서 아내를 찾았다.
다시 만난 아내의 얼굴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어져 있었다. 의사는 몇 달을 못 넘길거라 했다. 남편은 절규했다. “다시는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다시는…” 모든 일을 접고 아내 곁을 지켰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아내를 두고 지방 출장이 잦은 본업을 계속할수 없었다.
병원비는 밀려갔다. 생활이 어려워 하루 한 끼 먹기도 힘들어 남편은 불린 라면으로 배를 채워야 했다. 아내가 잠드는 밤이면 근처 호프집에서 통닭배달을 했지만 그마저도 그만둬야 했다. 영양실조와 골다공증으로 팔꿈치가 퉁퉁 부어올라 병원신세를 져야 했기 때문이다. 당장 잘 곳도 없어 병원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1년째 새우잠을 자는 남편은 지금 아내와 함께 죽음과 싸우고 있다. 실낱 같은 희망을 꽉 잡고 놓지 않는다.
“아내의 목소리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여보! 하고 한번만 불러주면 좋겠는데…. 여보! 고마워, 살아있어줘서….여보! 꼭 일어나야 해, 언제까지나 기다릴게.”
송씨는 오늘도 대답 없는 아내의 귓가에 희망과 사랑을 불어넣는다.
※도움 주실 분 우리은행 1006-792-000001 농협 703-01-360421, 예금주 (주)가톨릭신문사
기사입력일 : 2008-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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