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이가 다녀와야겠다!”
읍내 성당에서 12Km 떨어진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덕분에 초등학교 3학년부터 매일 아침 읍내 성당 새벽 6시 미사에 참례한 후 수녀님께 확인 도장을 받아와야 아침을 먹을 수 있었고, 정반대편으로 4Km 이상 떨어진 학교에 갈 때 도시락을 받을 수 있었다. 이렇듯 엄한 어머님께서는 또 성당 가까운 고아원 심부름도 자주 시키셨다.
3, 4학년 때에는 살구, 딸기, 참외, 수박, 복숭아 등 수확한 과일은 물론 잔치 후 떡과 잡채를 손수레에 실어서, 5, 6학년 때에는 감자와 고구마, 쌀과 밀, 보리쌀, 심지어 무와 배추까지도 마차에 실어서 심부름을 시키셨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소신학교 입학 후에도 방학 때 시골집에 내려가면 의례히 고아원 심부름을 시키셨는데 그것을 신부 될 때까지 15년 동안을 시키셨다. 덕분에 신부가 된 후에도 고아원과 양로원 방문하는 일은 쉬는 월요일의 일과가 되었다. 고향 읍내 성당 주임으로 발령 받아 어렸을 때 무심코 심부름 다니던 그 고아원을 본당 신부로, 아버지의 마음으로 내 집 드나들듯 다니게 된다. 그 때 인간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가장 보람 있었던 추억이라면 부임 3년 만에 78명 전원을 영세와 첫 영성체 시켰던 것이다.
“이 신부! 교도소 좀 해보게!” 신부 된지 9년차 초년생인데 교도소? 주교님의 명이시기에 호계동본당 주임으로 있으면서 안양 교도소와 소년원을 월 2회 교리와 미사를 봉헌하며 경험도 없는 교도소 특수사목을 했는데, 다음 인사이동에 따라 부임한 성당이 또 수원교도소(구치소)가 관할인 지동성당이었다. 하느님의 뜻일까? 아니면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주교님의 뜻일까? 곰곰이 생각 해 보았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무엇일까? 월요일이면 고아원과 양로원, 교도소와 복지시설을 방문하며 예상치 못했던 감동을 느끼며 당연히 해야 할 일(?)처럼 받아들이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며 사뭇 의아해 하기도 했다.
“이 신부! 교도소는 그만하고 연령회 좀 해 보시게!” “주교님! 신부 생활을 나이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50도 안되었는데 어떻게 제가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씀드리니 “고아원과 양로원, 교도소 경험을 살려 잘 해 보시게”하시며 더 이상 말씀 드릴 기회를 주지 않으셨다.
“신부님! 뭐가 보이셨습니까? 무언가를 느끼셨습니까?” 주변 신부님들과 교우들로 부터 자주 들어본 말이기에 이제 면역(?)이 된 듯 자연스럽게 들린다. 신부로서 철학적이거나 신학적인 이념보다는 나를 기다리는, 아니 기다려주는 고아원(지금은 보육원) 어린이들의 똘망똘망한 눈빛과 “아저씨! 신부님! 우리들 잠들거든 가세요.” 그저 오랫동안 함께 있어 주기를 바라는 말 한마디가 “내가 무언데? 크게 도와주는 일도 없는데 저렇게 아쉬워할까?” 쉬고 싶고 다음 기회로 미루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몇 시간 전부터 현관 앞에서 서성이시는 모습, 또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은 방문 앞까지 간신이 기어서 마냥 기다리시는 모습에 찡-한 감동을 얻지 않았던가?
군 생활을 포함 15년 동안 갇혀(기숙사)살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교도소와 구치소 안에서 하루 종일 아니, 365일을 하루 한 번 5분뿐인 면회만을 충혈 된 눈으로 기다리며 말과 행동은 물론 생각까지도 마비(?)되어 가는 이들을 생각하면 단 1분이라도 서둘러 교도소로 달려가곤 했던 순수했던 마음이 퇴색되지는 않았는가? 고아원과 양로원, 교도소의 외로움에 비길 수 있을까? 시계가 보이지 않게 치워달라고 애원하며 어차피 죽을 것 안락사라도 시켜달라고 불안과 절망, 통증에 못 이겨 신음하는 호스피스병동에 누워 임종만을 기다리는 분들과 비교할 수만 있어도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해 본다. “연옥 영혼을 생각하면 앉아 있을 수도 없고 누워있을 수도 없습니다. 벌떡 일어나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고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불 속에서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어떻게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성녀 카타리나)
“신부님은 무엇 때문에 장맛비 쏟아질 때가 제일 좋다고 하십니까?” 연옥 영혼을 위해 화살기도, 구원송, 주님의 기도, 희생, 묵주의 기도, 연도, 연미사봉헌 등 아무리 작은 희생과 기도라도 하느님께서 너그러이 받으시어 자비와 은총의 비로 마련하시어 연옥 영혼들에게 장맛비처럼 흠뻑 뿌려주시기를 애타는 마음으로 엎드려 기도드립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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