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⑥] Ⅰ.
완성의 과정이자 영원한 생명의 시작
죽음, 부활·하느님 나라의 삶 위한 전초적 단계
수난 죽음 부활의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11월은 위령성월이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11월은 세상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참된 삶에 대해 고민하고, 우리가 받은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시기이다. 이 뜻 깊은 시기를 맞아 죽음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이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본다.
“인간은 출산에서부터 죽어가고 있으며,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을 출발하여 이승의 종결점인 죽음을 향해 매일 한 발짝씩 다가가는 과정에 있고, 이것이 끝나는 순간이 죽음이다”(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397~401).
사람은 단 한번 죽게 마련이다(히브 9, 27). 교회는 죽음이 인간의 원죄로부터 왔다고 가르친다. 인간의 교만으로 하느님을 거스른 원죄를 통해서 죽음의 세력이 인간을 지배했으며 인간의 죄의 결과가 바로 죽음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인간 스스로 지은 죄로 인해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죽음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죽음이란 부활과 하느님 나라의 삶을 위한 하나의 전초적 단계이며 동시에 신앙으로 이끄는 요소다. 그래서 세례로 시작된 새 생명이 완성되며(가톨릭교회 교리서 1682항), 영원한 생명에로 돌아가는 것이다(1020항). 그리스도의 은총을 간직하고 죽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게 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러한 가르침을 재천명한다. 공의회는 “죽음 앞에서 인간 운명의 수수께끼는 절정에 이른다”(사목 18항)며 “믿음이 부족하면 죽음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 있을 것”(21항)이라고 했다.
죽음에 관한 가장 최근 교회의 입장은 1979년 신앙교리성의 ‘종말론의 몇 가지 문제점에 관한 서한’(1979)에 나타나 있다. 여기서는 ‘그리스도인의 죽음과 부활 사이에 무엇이 발생하는가’라는 질문에 “죽음은 인격적이며 영성적 위격인 인간에 관한 사건이며 인간 전체에 관한 사건으로서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인간 행위의 문제”라고 했다.
교회의 이같은 가르침의 핵심은 인간이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을 넘어서는 참 생명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그로 인한 부활의 희망 뿐인 것이다. 죽음과 정면 대적한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이 그리스도를 이겼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에 죽음을 넘어선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에게 결코 죽음은 없다고 선포한다. 그럼으로써 죽음은 이제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완성을 향한 과정이며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을 이긴 방법이 바로 그 죽음을 통해서였다는 것이다.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의 고통과 죽음 앞에서 고민한다. 그래서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마르 14, 36)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결국 그 고통과 죽음을 통해서 생명을 얻는다. 죽음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간 예를 우리는 순교자들의 삶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간적으로 불행이며 참을 수 없는 고통과 두려움의 대상인 죽음을, 수많은 순교자들이 스승인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기꺼이 받아들였고 그럼으로써 생명을 얻었다는 것을 교회는 가르친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은 그리스도를 구세주요 주님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고통과 죽음에 동참할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영원을 향하기보다는 현세의 풍요로운 삶을 꿈꾸는 인간들에게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여기에 대해 예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 23).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 자신을 죽이고 생명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얻을 것은 바로 영원한 생명이며 구원의 희망임을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하게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정한 죽음은 없다.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 25~26)
교회는 전례를 통해 이러한 그리스도의 계시를 탁월하게 재해석해내고 있다.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위령 감사송 1).
■ 임종자의 수호성인들
어린 시절, 우리들의 어머니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수호천사가 항상 너를 지켜줄 거야.” 그 천사들 중에서도 으뜸인 세 대천사가 있다. 우리는 그들을 가브리엘, 미카엘, 라파엘이라고 부른다. 가브리엘이 전령이고, 라파엘이 의료, 순례자와 관련한 천사라면 미카엘은 임종자들의 수호성인이다. 미카엘 대천사는 외경에 더 많이 등장하는데 주로 천상군대의 장수, 그리스도인의 보호자, 특히 임종자들의 수호자로 나타난다.
요셉 성인도 임종하는 이의 수호자다. 노동자, 가정, 동정녀 등의 수호자로도 꼽히는 요셉 성인이 특별히 임종자들과 연결되는 것은 요셉 성인이 ‘예수 그리스도가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을 것’이라는 가능성 때문이다. 성경에 요셉은 예수 탄생시기와 성장기에만 잠깐 나타난다. 예수 공생활 이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음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 따라서 요셉은 성모와 예수님의 간호를 받으며 마지막 죽음을 맞았을 것이고, 초기 교회부터 이러한 요셉의 모습은 다른 어떤 성인에게서 찾을 수 없는 특별한 은혜로 여겨졌다. 이밖에 동정 순교자인 성녀 바르바라도 갑작스런 죽음을 맞는 이들의 수호자다.
무엇보다도 임종을 생각할 때, 성모 마리아를 빼놓을 수 없다. 아들의 십자가 죽음을 지켜본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죽음 앞둔 이들을 한없이 자애로운 눈으로 내려다 보시는 분, 바로 성모 마리아다.
■ 죽음 묵상에 도움을 주는 성구(聖句)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 당신께서 제 목숨을 죽음에서 건지시어 제 발이 넘어지지 않게 해 주셨으니 하느님 앞에서, 생명의 빛 속에서 걸어가도록 하심입니다(시편 56, 14).
▲ 하느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느님. 주 하느님께는 죽음에서 벗어나는 길이 있네(시편 68, 21).
▲ 주님께서 나를 그토록 벌하셨어도 죽음에 내버리지는 않으셨네(시편 118, 18).
▲ 주님을 경외함은 생명의 샘이니 죽음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잠언 14, 27).
▲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 4).
▲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 38~39).
▲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2코린 4, 10).
▲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폐지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 주셨습니다(2티모 1, 10).
▲ 우리는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는 것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죽음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1요한 3, 14).
▲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요한 5, 24).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요한 8, 51).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 25~26)
사진설명
▲납골당에서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신자들의 모습. 죽음은 곧 새 생명에 대한 희망이다. 그리스도인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을 넘어서는 참 생명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그로 인한 부활의 희망 뿐이다.
▲아들의 십자가 죽음을 지켜 본 성모님은 임종하는 이들에게 더 없이 큰 위로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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