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가장 크게 싸운 기억을 더듬어 본다면…. 아, 신혼 초였는데요, 아내랑 저녁에 심심풀이 고스톱을 쳤거든요. 근데 그게 내기 돈이 좀 커진 겁니다. 제가 계속 지는 통에 돈이 백만원도 넘게 불었어요. 그래서 제가 액수를 좀 속이곤 다른 방으로 냉큼 도망가 문을 잠가 버렸는데 아내는 약이 올랐는지 문이 부서져라 두드리고, 결국 재미로 시작한 게임이었는데 싸움으로 번져 1박2일간 서로 말을 안했었다니까요.
결혼 후 얻은 가장 큰 선물은 딸 유빈이입니다. 이제 세살인데, 말을 어찌나 잘하는지 제가 도저히 못당할 지경이라니까요. 가끔 장난처럼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하고 물어보는데, 요즘엔 그런 질문은 너무 귀찮다는 식으로 '응, 난 유빈이가 좋아'라며 주변 사람을 웃게 만들지요.
유빈이가 태어난 후 제 삶에서 가장 큰 변화는 '한우'를 못먹는 것입니다. 왜냐고요? 모든 좋은 것은 곧바로 유빈이에게로 전해지거든요. 예전에 저희 어머님이 ‘내가 너희를 어떻게 길렀는지 모를 거다’라는 말씀을 하실 때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 싶었는데, 자식을 키우면서 새삼 그 말씀이 이해되더라고요. 내가 먹지 않아도 자식에게 만큼은 가장 정성을 쏟고 싶은 부모 마음이랄까요.
전 우리 유빈이가 그저 착하고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저는 유빈이가 다른 곳에서 방황하지 않고 늘 성당을 가까이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야겠지요. 지난 주 라디오 생방송을 마치고 가족들이 함께 저녁미사에 참례했거든요. 유빈이가 수녀님과 이야기하고 있는 복사단들에게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유빈이도 자라면 꼭 복사단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유빈이가 주님의 울타리 안에서만 움직이게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습니다. 제가 부모님 덕분에 신앙을 탄탄히 할 수 있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정말 신앙 교육은 어릴 때 가정에서부터 올바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형제들도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중심으로 정말 잘 뭉치기로 유명했거든요. 저희 가족의 팀워크는 가히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고향인 순천에선 지금까지도 유명하답니다. 저희 아버지는 자녀를 세심하게 잘 챙기시는 분이시거든요.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이라도 감내하시는 분이시라 남들이 볼 땐 좀 과잉보호다 싶을 정도지요.
어릴 때 전 순천 저전동본당 성모유치원엘 다녔거든요. 당시 동네의 좀 큰 어린이들이 제가 아침마다 유치원엘 못 들어가게 괴롭히곤 했어요. 그래서 어느 날은 제가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했더니 아버지께서 제 뒤를 몰래 따라 오셔선 그 아이들을 혼내신 기억이 있습니다. 어린 저로서는 아버지의 사랑이 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고나 할까요? 이후론 친구들과 싸움을 하다 다쳐도 집에 돌아가선 어머니와 의논해서 다른 일로 다쳤다고 말한 적도 있어요. 저를 때린 아이들에게 또 달려가 혼내주실까봐요.
그렇게 자식들에게는 참 애틋하고 정성이신 아버지와 순하고 겸손하신 어머님 덕분에 저희 형제들은 부모의 내리사랑을 자연스럽게 가슴 깊이 새기게 됐고, 이젠 저희 자녀들에게도 그 사랑을 전해 주려 합니다.
기사입력일 : 2008-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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