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사울의 열정을 높이 사셨다
가톨릭신문사(사장 이창영 신부)와 미래사목연구소(소장 차동엽 신부)가 공동 주최한 ‘바오로 성인 탄생 2000주년 기념, 차동엽 신부와 함께 떠나는 터키·그리스 성지순례’가 10월 15~25일 10박11일 동안 터키 및 그리스 일대에서 펼쳐졌다.
‘가톨릭신문투어’와 ‘참 소중한 당신’이 주관한 이번 성지순례에는 서울대교구와 대구대교구를 비롯해 전국 각 교구에서 순례자 97명이 참가했다.
10월 15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한 순례단은 터키 카이세리를 시작으로 카파도키아·악사라이·콘야·파묵칼레·이즈밀·에페소·쿠사다시·이스탄불과 그리스 아테네·코린토 등을 순례하며 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따랐다.
차동엽 신부는 터키 및 그리스 현지에서 순례단과 함께 9차례의 공동체 미사를 봉헌하고, 특강을 가졌다. 본지는 순례단의 이모저모 및 화보와 함께 차동엽 신부의 터키 및 그리스 현지 특강을 두 차례에 걸쳐 지상중계 한다.
-차동엽 신부 특강 (요지) 지상중계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주님 앞에서 성찰하며 ‘혼자’ 결정 하십시요”
사울, 즉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을 만나 두 가지가 바뀌었다. 하나는 자신의 변화다. 곧 그는 박해자에서 증거자로 변했다. 다른 하나는 세계사의 변화다. 유다인의 시대에서 이방인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제 세계로 향한 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사울은 박해자였다. 그는 처음에 예루살렘에서만 박해했다. 이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피해서 흩어졌다. 그러자 사울은 그 신자들까지 발본색원하기 위해 유다 지도자들에게 요청해 그들을 잡아올 수 있는 권한과 군사를 위임받는다.
사울이 다마스쿠스로 향한다. 얼마쯤 갔을까? 사울은 가다가 ‘번개 같은 섬광’에 맞아 말에서 떨어진다. 그리고 빛이 왔다. 사울은 눈이 먼다. 여기서부터 사울은 혼자 움직이지 못하고, 동행하던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쿠스로 간다. 사흘 동안 단식에 들어간다.
여기서 잠시 살펴보자. 박해자였던 사울이 어떻게 다른 민족들을 위한 그릇이 될 수 있는가? 사울은 디아스포라 출신의 히브리인이었다. 그는 현재 터키의 작은 도시인 킬리키아의 수도 타르수스에서 5년과 10년 사이에 태어났다. 게다가 로마 시민권을 지니고 있었다. 여기서 세 가지가 드러난다.
첫째, 정통 바리사이로서 유다이즘에 정통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유다인을 만나면 상대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둘째, 그리스 문화권에 살았다는 것은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헬레니즘에 정통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곧 그가 유럽 전역, 세계 전역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셋째,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당시 유럽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로마 시민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로마를 상대할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이 모두를 갖춘 사울이었기에, 주님은 그를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 세우셨던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제일 중요하게 보신 것은 그의 ‘열정’이었다.
한편 사울은 회심 후 여러 장벽에 부딪히기 시작한다. 유다인들로부터는 배반자로 낙인찍힌다. 사울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3년의 공백기를 아라비아에서 머물렀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전한다.
‘그때에 나는 어떠한 사람과도 바로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이들을 찾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습니다’(갈라 1, 16~17)
여기서 몇 년 있었다는 이야기는 없지만, 계산을 해 보면 3년이다. 충분히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배울 점이 있다. 평소 의논할 때는 누군가와 함께하더라도, 정말로 중요한 사안은 홀로 결정하라는 얘기다. 주님 앞에서 성찰하고 주님의 음성을 확인하라는 말이다. 물론 사안의 경중은 잘 구분해야 한다.
드디어 사울 안에서 마치 ‘물이 포도주로 변하듯’ 기적이 일어난다. 증오가 사랑으로 둔갑한다. 그는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나 복음을 직접 듣는다. 박해자 사울이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가 된다.
‘저 사람은 예수살렘에서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자들을 짓밟은 자가 아닌가?’(사도 9, 21)
바오로는 이런 말을 들었던 사람이다. 이런 그가 실제로 예수님의 이름을 선포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변신’한 것이다. 우리는 이 ‘변신’을 한번 묵상해 볼 필요가 있다.
변신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이쪽에서 보면 그것은 배신이요 변절이다. 그러나 저쪽에서 보면 발전이요 진보일 수 있다.
우리가 ‘이쪽’의 입장에 있을 때 우리는 그 당사자를 ‘이탈자’라고 부른다. 우리가 ‘저쪽’의 입장에 있을 때 우리는 그를 ‘회심자’라고 부른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하느님만이 아시는 일이다. 최종판결에서 과연 ‘이쪽’ 손을 들어줄지 ‘저쪽’ 손을 들어줄지, 그것은 더 이상 사람의 소관이 아니다.
사진설명
▲10월 24일 순례단이 터키 이스탄불 보스포루스 유람선상에서 차동엽 신부와 기념촬영 했다.
▲10월 17일 순례단이 터키 콘야 성 바오로 기념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10월 19일 순례단이 터키 에페소의 성 요한 성당 터를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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