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6년 전 신도시에 살다가 이곳, 심한 오지는 아니지만 농사와 고기잡이를 겸하는 바닷가 동네 서신으로 이사했다. 오래 전부터 그리던 시골 생활이라 새로운 것에 설레었고 낯선 풍경들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정말 천주교 신자라는 것에 감사했다. 짧은 시일에 교우들을 이웃으로 얻었고 도시 본당에선 느낄 수 없었던 구역 식구들의 관심 또한 모두 다정한 이웃사촌이었다. 반면 조금 힘들었던 것은 소문이 빨라서 자칫 어려웠던 일도 있었지만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선 본당 사회복지분과에서 봉사하면서 동네 분위기를 익혀나가며 소공동체 봉사자로 활동했다. 이곳엔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이 거의여서 젊은 사람들(50~60대)은 몇 가지씩 겸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별다른 경험도 없고 아는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발바닥 신자였던 터라 어설펐지만 신부님의 격려로 용기를 냈다.
헌데 의욕이 앞선 것인지 회의 때 깔끔 떨며 잘난 척 하다 잘못 전해진 소문에 오해가 생겨 된통 혼난 적이 있었다. 그때의 그 암담함이란.
결국 싹싹 빌다시피 풀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곳 교우들과의 거리감이 느껴졌던 경험이 되었다. 이후 이를 극복하는데 몇 년의 시간을 필요로 했고 그 이후로 직접 관련된 일이 아니면 절대 말을 쉽게 하지 않고 조심해야 하겠다는 다짐과 원칙이 생겼다.
어찌 보면 나의 옹졸함과 무지 때문에 몇 년 세월을 허송한 것이 아닌지 가끔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그동안의 경험으로 얻은 것이라면 먼저 고개 숙이며 내어주고 마음으로 대하면 평화가 온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젠 별 거리낌 없이 내가 먼저 다가가 마음을 여는 자세로 변화되고 내가 먼저 포기하는 것을 선택하게 되었다.
큰 본당에서는 주일에 어떤 신자가 안 보이는지 신부님은 기억 못 하신다. 이곳 본당은 어쩌다 주일을 궐하면 “어디 다녀왔어요?”라며 다 아신다. 이렇듯 가족 같은 시골 본당에서 나를 버리고 구역 교우들의 편하고 허물없는 도우미로서의 나를 만들려 애써보련다.
그분들과 같은 색깔 같은 모양으로 다듬어지는 것이 신앙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지만 조금 찔린다. 어쩌면 하루살이가 내일을 모르고 메뚜기가 내년을 모르듯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막연함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뻔한 질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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