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종신부로 지내며 ‘떠나보내는 이’ 마음 이해
그저 함께 있는 것 그 자체가 사랑임을 깨달아
어느 군종신부님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정성스럽게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꼬마 복사들이 소곤소곤 장난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미사가 끝나고 제의방에 들어가 복사들에게 이렇게 훈계를 했다고 합니다.
“얘들아, 신부님이 항상 너희들과 함께 있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신부님이 너희들과 같이 있는 동안에 좀 잘해야지.”
그러자 이런 맹랑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신부님, 저희들이 신부님 보다 먼저 떠나게 될 걸요?”
군인 가족들은 군인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여기저기로 자주 이사를 다닙니다. 그러니 어린 복사들이 이런 대답을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분은 결혼생활 한 햇수보다 이사 횟수가 더 많다고 할 정도입니다. 이동이 잦은 이러한 생활도 군인신자들만이 가지고 있는 애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군종신부로 오기 전 제가 있던 본당을 떠날 때, 어느 할머니께서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부님은 그냥 혼자 떠나시지만, 떠나보내는 우리 마음은 모르실 겁니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할머니의 그 말씀을 이제 와서 공감하게 됩니다. 떠나는 사람과 떠나보내는 사람의 마음이 서로 이별을 아쉬워한다는 면에서는 같은 것이지만, 떠나보내고 남아있는 사람의 마음은 분명 더 섭섭하고 아쉬울 것 같습니다.
군종신부가 되기 전에는 늘 혼자서 떠나는 입장이었는데, 군종신부가 되고 나서는 늘 혼자 남아서 떠나보내는 입장이 되니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해마다 이맘 때면 군인 신자들의 이동 소식이 들려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떠나보내야 할 분들이 몇 분 있습니다. 벌써부터 섭섭한 마음이 들고, 마음으로는 벌써 이별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열쇠본당으로 처음 부임해 오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사목회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사목회의 목표는 이종민 마태오 신부님의 ‘장기 복무’입니다.”
농담 삼아 하시는 말씀이시려니 하고 그냥 듣고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도 많은 분들이 ‘장기 복무’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을 해 오셨습니다. 그때 마다 역시 그냥 하시는 말씀이시려니 하고 지나가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장기복무를 하건 말건 그건 내 사정인데 왜 이렇게 관심을 보이시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사랑은 행위에 있지 않고 존재에 있다’라는 격언이 떠올랐습니다.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저 함께 있는 것, 그 자체가 사랑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군종신부가 군인신자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표현은 오래 함께 지낼 수 있는 ‘장기 복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저 장기복무하기로 결정했습니다”라는 말은 군종신부가 군인신자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 고백인 것입니다.
장기복무를 하건 말건 그건 여전히 내 사정이지만, 군종신부와 함께 있는 군인신자 여러분, 사랑합니다.
이종민 신부(군종교구 열쇠본당 주임)
군복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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