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형성 영향 주는 주님께 귀 기울여라
하느님은 이 세계가 당신 충만으로 형성되도록 섭리
형성의 신비서 영적 능력 충분히 받아 이웃에 전해야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인간 개개인은 스스로가 직접 조종하지 못하거나, 혹은 인지하지 못하는 사건과 힘에 영향을 받고 있다.
IMF 경제 위기는 우리 자신의 잘못도 일부 있지만, 국제 경제 질서에 의한 원인이 더 크다. 미국 경제가 휘청이면, 자동차를 팔 수 없고, 국내 자동차 기업이 무너지게 된다. 당장 직원들의 생계가 위협을 받게 되고, 지출이 줄게 된다. 이에 따라 각종 서비스업이 위축을 받게 된다. 미국 경제가 뭐 길래…. 북한 핵문제는 남한 정부의 의도와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남한 정부가 원하든 혹은 원치 않든 북한 핵문제는 자아발양된 그들의 뜻대로 별도로 일어나는 사건이다.
세계 원유가 인상은 당장 나 자신이 자가용을 운행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 나 한 사람은 원유가 인상 혹은 인하에 어떤 영향도 줄 수 없고, 더군다나 관계도 없다. 하지만 나는 원유가 인상에 큰 영향을 받는다.
나만 착하고 성실하게 산다고 해서 나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개인의 역사가 중요하듯이 세계의 역사도 중요하다. 개인은 홀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함께 서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교회는 이 세상에 참으로 많은 영향을 주어왔다. 마더 데레사 수녀의 삶, 교황들의 교서,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프란치스코….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브라함, 모세, 수많은 예언자들 모두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까지 직접적 영향을 주고 있다.
많은 이들이 중세시기를 암흑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중세 역사 안에 담겨진 보화가 엄청나다. 근세는 중세 없이는 불가능했다. 근세의 장을 연 경험주의 철학자 프란치스 베이컨이 “나는 중세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 세상을 바라보는 난쟁이”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 긍정적인 역할이란 ‘형성적인 것’(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에 미리 형성하도록 심어놓으신 초월성을 성취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세상에 주는 것을 말한다. 전쟁, 권력투쟁, 시기, 질투 등은 ‘반형성적인 것’(하느님을 향한 초월성을 가로막는 것)이다. 형성적 사건은 더 나은 결과를 유도하고(선순환), 반형성적 사건은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악순환).
예수는 이 반형성적인 것을 몰아내고자 했다. 오늘날 우리 주위, 성당에서도 그런 반형성적인 기운이 있다. 한 신부님이 성당에서 어떤 일을 추진하려 할 때 어떤 신자들은 뒤에서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신부님 사목 방침에 문제가 있다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진정으로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신부님을 찾아가서 정정당당하게 말해야 한다. 사제나 평신도나 인간적 욕심과 오만으로 가득차서 어떠한 일을 추진한다면 그것은 반형성적인 것이다.
자신의 내면을 형성적으로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너무나 오래된 타성에 젖어서 이웃을 함부로 심판하고 교회를 함부로 욕되게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재형성 시켜주어야 한다. 약사는 병자에게 약을 주고, 의사는 주사를 주거나 심하면 수술을 하지 않는가? 사회든 교회든 부족한 점이 있다면 정당하게 분별해 가면서 나아가야 한다. 나쁜 것이 마음에 가득한 사람은 매일 나쁜 말만 하게 되어 있다. 삶에 만족하지 않는 그릇 작은 사람은, 그릇 작은 그 마음으로 세상을 비뚤어지게 본다. 넓게 보지 못한다.
이 세계는 형성의 장(場)이다. 그 안에서 나 자신을 어떻게 형성시킬 것인가, 그리고 가족과 이웃을 어떻게 형성시켜 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당신의 충만으로 형성되도록 이미 섭리하셨다. 이것이 바로 형성의 신비다. 형성의 신비로부터 오는 영적 능력을 충만히 받는 가운데, 우리는 이 관계를 이웃과의 관계로 확대해야 한다. 우리는 이 형성의 장에 영향을 주고 있는, 아니 그 중심에 서 있는 하느님께 무엇보다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안테나를 세우고 있어야 한다.
비(非)신앙인이나 자아발양된 교만한 신앙인들의 오만에 차고 욕심 가득한, 여러 형태들에 현혹되면 안된다. 우리는 형성의 장에 귀 기울여야 한다. 우리 자신을 망가트릴 수 있는 잘못된 형태는 한편으로는 멀리 있으면서도(초탈) 다른 한편으로는 재 형성의 치료를 해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형성적 신비로부터 나오는 좋은 형태, 좋은 에너지만을 흡수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귀를 잘 기울이고, 분별을 잘해야 한다. 바른 것을 수용하고 잘못된 형태는 정리해야 한다.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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