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태어나면 이름이 붙는 법인데, 교우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땀을 흘리게 될 우리 농장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할까 고민 하다가 ‘하늘땅사랑농장’(www.skylandlove.org)으로 정했다. 이 농장을 통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농사를 짓는 이들과 여기에서 나오는 것을 이용하는 이들을 모두 사랑하자는 의미에서였다.
고구마 순을 심는 날, 교우들을 농장으로 먼저 보내고 나는 익산에서 고구마 순을 싣고 트럭에 몸을 실었다. 3500평에 심을 고구마 순이 600단, 낱개로 6만 개의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나름대로는 준비를 한다고 하였지만, 정작 순을 어떻게 심어야 하는지 몰라 순을 싣고 온 분들에게 물어봤다. 농장에 도착하니 버스에서 내려 농장으로 걸어오는 교우들의 모습이 대단하다. 참석한 인원이 130여 명. 본당미사 참례자 수가 300여 명 되니, 생업에 종사하는 분들과 병환이 있는 분들, 학생들을 제외하면 모두 나온 셈이다.
나는 고구마 농사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조금 전에 차를 타고 오면서 배운 순 심는 방법을 교우들에게 알려줬다. 그런데 갑자기 공소의 한 할머니가 태클을 걸어온다. “아니유, 신부님. 그건 그렇게 심는 것이 아니구 이렇게 하는 거유.”
예전에 고구마를 심어 본 경험이 있는 분의 말씀이라 무시할 수도 없었다. “순을 가져오신 분이 알려주신 것인데요?” 하지만 그분은 다시 펄쩍 뛴다. “아이구, 아니라니까유. 그건 저 넘들이 순 많이 팔아먹으려구 그러는 거지유.”
다른 교우들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고 어느 쪽으로든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나는, 결국 한 쪽을 선택해야 했고 다행히 그게 옳았다. 산더미처럼 쌓인 고구마 순은 교우들에 의해 하나씩 밭에 자리잡아 나갔다. 형제들은 비닐을 두둑 위에 씌워나갔고 모두가 입에 단내가 풀풀 날 지경이 되어 고구마 밭이 완성됐다. 다음날 미사 후, 어느 교우 분이 내게 와서 인사 하신다. “신부님 저희에게 이런 축제의 자리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드려야 할 인사를 오히려 내가 받은 것이다.
교우들에게 농사를 짓자고 처음 이야기하던 날, 나는 눈 한 번 깜짝하지 않고 사기를 쳤다. “농사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일 년에 서너 번만 나오시면 됩니다. 그 다음은 제가 하겠습니다.” 물론 나는 거짓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사기를 친 신부가 되었다. 하지만 농사라고는 ‘ㄴ’자도 모르는 신부가 하는 이 한심한 말을 교우들은 묵묵히 따라줬다.
자신도 모르는 길을 다른 사람까지 끌고 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무모한 일인가? 그래서 더욱 힘들었던 농장의 첫 해는 교우들의 이해 속에서 하루하루가 무사히 지나갔다. 필요해서 농사를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교우들의 동의 없이는 처음부터 할 수 없었던 일이라, 교우들이 원하지 않으면 그만두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길 났는데 왜 그만둔대유?”라는 격려가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쪽으로 방향을 정하게 됐다. 농사는 짓는 일도 어렵지만 사실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판매하는 것이다. 다른 농가에 비하면 성당에서 하는 일이야 ‘누워서 떡먹기’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원무 신부 (대전교구 논산대교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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