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등이 왕림성당은 우리나라에서 종현(명동)성당(1882), 원산성당(1887)에 이어 세 번째로 설립(1888년 7월 14일)된 역사 깊은 본당이다. 본당설립 이전의 역사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성 라우렌시오 앵베르 범 주교의 일기에 ‘갓등이 공소’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기해박해 이전부터 교우촌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달레 한국교회사 p.388).
병인순교자증언록(PP.424-425)에 의하면 갓등이에 가까운 지방 출신 신자 중 3명의 순교자가 있었다. 이처럼 갓등이 왕림성당은 순교자들의 발자취와 얼이 담겨진 소중한 곳이다. 뿐만 아니라 수원교구에서 전통이 있는 미리내성당(1896), 하우현성당(1900), 북수동성당(1923) 등도 왕림본당에서 분할되었다.
이처럼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진 것은 물론,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훌륭한 전통을 자랑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선교단, 성체조배회, 데레사회, 성모성심회, 돈보스꼬회 등 다양한 신심활동 단체들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선교단은 가장 모범적인 평신도 선교단체로서 신앙심 깊은 회장들로 구성되어 수십 개의 공소를 직접 방문하며 교리를 가르치고 선교활동을 하였다. 이들은 한 번 선교여행을 떠나면 며칠, 혹은 몇 달에 거쳐서 선교를 하기도 하였다. 마치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각 지방을 방문하여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공동체를 세우며 활동하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초기 왕림본당 공동체는 공소 수십 개와 수천 명의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런 방대한 본당을 본당 신부 혼자 사목하기란 힘든 일이다. 지금처럼 교통수단이 발달 되어 있지도 않았고, 또 공동체가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안성이나 수원, 남양 등 몇 십리 이상 떨어진 공동체를 사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본당 사제의 열심한 사목활동과 이들 선교단의 활동이 하나로 합쳐져서 본당공동체가 보살펴지게 된 것은 현재의 본당사목활동에 있어서도 많은 귀감이 되는 모범적인 성공사례라고 생각한다.
왕림본당 공동체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는 교육 사업이다. 1893년 초대 본당공동체 주임사제들은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들이었다. 이분들은 교육 사업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2대 본당사제였던 한약슬 요셉 신부는 1892년 삼덕학원을 신축, 1893년 개원하여 그 해 45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학원은 후에 광성초등학교의 모체가 되었고 광성초등학교는 오랜 동안 왕림 본당 신자들의 배움의 요람으로 신앙과 배움을 함께 성장시킬 수 있었다. 당시 예산이 부족하여 학생들이 방과 후에 뽕잎을 따서 누에를 키우고, 그 기금으로 학교를 유지해야했던 손때와 정성과 사랑과 애환이 담긴 배움의 터전이었다. 다행히 광성초등학교가 폐교 된 후 사제들의 못자리라고 할 수 있는 수원가톨릭대학교가 이곳에 설립(1984)되었다. 처음 선교사들이 시작했던 겨자씨와 같이 작은 사업들이 후에는 사제를 양성하고 배출하는 훌륭한 교육기관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현재 수원가톨릭대학교는 25회 졸업생과 더불어 총 436명의 사제를 배출하였다.
현재 왕림본당은 인근의 발안성당, 남양성당, 정남성당, 봉담성당 등을 분할하여 1500명이 채 안 되는 교우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 16일 수원가톨릭대학교 운동장에서 본당설정 120주년 기념 감사 미사 및 잔치를 성대하게 치렀다. 이 날 평택대리구장 조원규 신부와 역대 본당신부, 본당출신신부 및 내빈 신부 12명이 함께 공동으로 미사를 집전하였다. 제대 배경은 역대 본당신부들의 사진으로 꾸미고, 제대 앞은 120년의 역사를 담은 역사 기록물로 꾸몄다. 본당공동체는 이날 돌아가신 역대본당 신부들의 사랑에 감사를 드렸고, 함께 미사를 집전한 사제들과 또 함께 하지 못한 사제들에 대하여도 감사를 드렸다.
왕림본당 공동체의 현재의 자랑거리는 무엇보다도 활기차고 엄숙한 전례생활이다. 어르신들이 많은 공동체이지만 기도소리와 성가소리는 어느 본당공동체보다도 우렁차고 활기차다. 이런 기도소리가 우리 신자들의 신앙상태라고 생각한다. 또한 주일학교 대상 어린이가 120명가량 되는데 주일학교에 나오는 어린이는 대략 70여명이고, 매일 미사에 나오는 어린이도 30여명이나 된다. 이런 어린이들의 신앙생활과 공동체의 우렁찬 기도소리는 우리 본당 공동체의 미래를 내다보게 한다.
앞으로의 과제는 120년의 역사를 새롭게 정립, 본당사를 발간하는 것과 신학교와 본당과의 관계에서 있었던 매끄럽지 못한 역사의 과제를 하느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방법으로 교회 공동체가 모두 공감할 수 있게 조명하면서 회복시키는 일이다. 또한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의 말씀인 ‘온 세상 끝까지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는 말씀’을 온 신자가 함께 실천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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