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적-의도적 형성의 상호 보완 필요
자연적 성향에만 맡겨진 삶은 인간적이지 않아
숙고·묵상·노력 등 수반된 형성 갈무리가 관건
몸 아파본 사람이 건강의 소중함에 대해 안다. 몸의 한 장기가 병들었다면, 그 장기를 재형성시켜야 한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거나 약을 먹어서 그 장기의 원래 기능을 회복시켜야 한다. 경제적 능력이 있는데도, 아픈 몸을 그대로 방치하는 사람은 없다.
정신과 마음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재형성시켜야 한다. 문제는 많은 이들이 몸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과 달리 정신과 마음에 대해서는 소홀하다는데 있다. 그런데 여기서 정신과 마음의 형성은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다.
자연적인 형성과 의도적인 형성이 그것이다. 자연적인 형성은 말 그대로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自然)이다. 자연적 형성은 무의식적 형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갈 때 모든 것을 의식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 학교에 갈 때 아무 생각 없이 갈 경우가 있다. 학교에 가야 하니까 그냥 학교에 가는 것이다. 오토매틱이다. 주일 미사 참례하는 것도 그렇다. 매 주일 대단한 의식을 가지고 “오늘은 하느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참 진리의 삶을 사는 자양분을 얻어야 겠다”며 성당에 오는 사람은 극히 소수다. 때로는 습관적으로 미사에 참례할 때도 있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무의식적으로 출근하고, 책상에 앉고, 서류를 펼쳐 들 때가 있다.
반면 의도적 형성은 자연적 형성과 달리, 일종의 숙고와 의지가 함께하는 형성이다. 회사의 발전을 위해, 나 자신의 개발을 위해 매순간 의지적으로 노력하는 직장인은 의도적 형성을 사는 것이다. 미사 참례를 정성껏 하며 하느님께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노력은 의도적 형성의 한 단면이다. 의지적으로 나 자신을 형성시켜 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적 형성은 의도적 형성에 의해 보완되어야 한다. 자연적으로 다가오는 상황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적응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숙고와 묵상, 노력, 의지가 있어야 한다.
반대로 의도적 형성 역시, 끊임없이 자연적 삶의 성향에 의해 자양분을 공급받아야 한다. 모든 의지와 의도가 자연적 상황을 넘어서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정오에 정확히 식사를 하고 싶지만, 갑자기 손님이 찾아올 수 있다. 세계는 매순간 나에게 그때그때 다가온다. 의도적 형성은 이렇게 자연적 상황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연적 상황을 어떻게 잘 이용해서 나 자신의 의도적 성향으로 갈무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따라서 양극단에 위치한 자연적 상황과 의도적 노력이 서로를 보완해야 한다.
이 둘 사이에는 창조적 긴장이 있다. 어떤 이들은 그저 그렇게 자연적으로 매순간을 살기를 원한다. 창조적이고 의도적인 것은 노력을 필요로 하고 땀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 그렇게 삶을 살아간다. 밥 먹는 것, 잠자는 것 등은 자연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해 나가는 것들이다. 식물과 동물들이 이렇게 살아간다. 식물은 태양의 빛을 받아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다. 물론 동물도 의도적 삶을 살 수 있다. 뱀은 추위를 피해 겨울잠을 잔다. 원숭이는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나무 위를 힘들게 오른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는 의도적인 성향이라기 보다는 본능에 가깝다. 뱀과 원숭이의 행동은 저 높은 곳을 향한 창조적인 것이 아니다. 인간은 다르다. 자연적 상황에만 맡겨진 삶이나, 창조적이지 않은 삶은 인간 삶의 성향이 아니다. 그 속에서는 창조적 긴장이 없다. 숙고되고 의도적인 성향은 긴장을 일으킨다.
그렇다고 해서 의도적 형성만이 전부인 것은 아니다. 히틀러는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이들을 고통 받게 했다. 형성적이든, 반형성적이든 나름대로 자신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히틀러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도를 가지고 진정으로 많은 땀을 흘리며 노력했다. 자녀가 법대에 반드시 입학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를 생각해 보라. 부모는 자녀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법대에 입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쁜 의도와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의도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자연적으로 다가오는 상황들을 받아들이는 가운데서 이뤄져야 한다. 자연적 성향이 먼저 숙고된 후, 그 다음에 진리 또는 하느님의 보다 깊은 뜻을 찾기 위해 묵상된 의도된 성향이 동시에 발휘되어야 한다. 그래야 인간이다.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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