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으로 그늘진 달동네에 사랑의 씨앗 움트다
점심 제공·병원 진료 도우미 등 가난한 이 위한 다양한 사업 전개
“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는 잡을 수 있는 방법 알려주는 것이 역할”
초가 빛납니다.
아기 예수를 기다리며 한 주 한 주 밝혀지는 대림초가 아름답게 빛납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늘어나는 자살 등 암울함 속에서도 대림초의 불빛은 유독 아름답게만 느껴집니다.
대림시기를 맞아 암울한 이 시대에 빛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촛불 같은 이야기를 담아봅니다.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 장위동은 현재 투쟁 중이다. 장위동에 불어 닥친 뉴타운 바람으로 마을 분위기는 더욱 냉랭하다. 주변과는 동떨어진 듯한 높은 아파트와 빌딩, 멀리 보이는 백화점의 그늘 아래서 서민들은 지쳐간다. 그나마 이들이 겨울을 포근하게 보낼 수 있는 것은 마을에 있는 따뜻한 촛불 하나 때문이다. 장위1동의 수많은 골목 중 한 골목 언덕배기에 위치한 ‘성북 평화의 집’이 그곳이다.
#촛불,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다
11월 20일 오전 11시30분, 점심시간이 다가오는 즈음 동네 할머니들이 평화의 집을 찾는다. 전날 급격하게 떨어진 기온 탓인지 평소 찾아오던 할머니들의 반 정도밖에 오지 않았다.
이날 점심식사는 새로 담근 김장김치와 김치꽁치조림 등이다. 이가 시원찮은 할머니들은 밥을 물에 말아먹으면서도 봉사자들이 준비한 반찬을 맛있게 먹는다.
“집에서는 귀찮아서 안 먹더라도 여기서는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워!”
“동네 노인네들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밥도 먹고 즐거워요.”
한 시간 남짓한 짧은 점심시간은 할머니들과의 즐거운 수다로 지나간다.
성북 평화의 집은 다른 지역 평화의 집과는 달리 매일 동네 어르신들에게 점심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처음에는 평화의 집 마루와 방을 노인정처럼 어르신들에게 개방했다. 그러던 중 어르신 중 대부분이 하루에 한 끼도 못 챙겨 먹는다는 얘기를 듣고 본격적으로 점심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한 지 7년째다.
이곳은 어르신 점심식사 말고도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어울려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비누를 만들어 판매하는 공동체도 준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 스카우트와 가정방문, 병원진료 도우미, 소공동체운동 등이 이들의 몫이다.
성북평화의 집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최 벨라뎃다 수녀(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는 “이 지역민들의 자립을 위해 항상 고심하고 있다”며 “이들에게 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는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우리 역할”이라고 말했다.
#촛불, 세상을 밝히다
“촛불은 어둠 때문에 의미가 있습니다. 평화의 집은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작은 불씨일 뿐이지요.”
성북 평화의 집과 함께 가난한 이들의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장위1동 선교본당 이강서 신부의 말이다.
성북 평화의 집은 이신부의 말처럼 작은 불씨다. 7년 전 처음 장위동 지역으로 들어 온 평화의 집은 종교를 넘어 지역주민들과 어우러져 공동선 실현을 위해 지금까지 끊임없이 달려왔다. 때문에 평화의 집은 독자적으로 사업을 계획하기 보다는 주민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업을 구상한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할 때 교회도 이 세상에 현존할 수 있다는 것이 성북 평화의 집이 가지고 있는 이상이다.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도 이곳의 특징이다. 성북 평화의 집에는 최 수녀와 박화자(도미니카)씨, 두 명이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무리한 업무보다는 현실성 있는 일들을 해결하려고 한다.
최수녀는 “유기적으로 지역주민들과 협력할 때 공동선과 사회교리가 실현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성북 평화의 집은 지역 내 다양한 단체들과도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면서 작은 불씨를 퍼뜨리고 있다. 특히 얼마 전 평화의 집에서 분리된 ‘햇살놀이 어린이집’의 보모와 취사담당자 등과 같은 일자리를 지역주민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지역의 촛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뉴타운 개발 시행이 다가옴에 따라 평화의 집에서도 걱정이 늘어난다. 게다가 주거환경개선으로 인해 ‘가난’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도 이들 어깨의 힘을 빠지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북 평화의 집이라는 작은 불씨가 꺼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도심이 개발된다고 ‘가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모습이 바뀔 뿐이죠. 저희는 언제나 그들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있는 곳에는 평화의 집이 있을 것입니다.”
서울에 첫눈이 내리던 날에도 성북 평화의 집은 위태롭지만 여전히 작은 불씨를 환히 비추고 있다.
※문의 02-941-4944
사진설명
▲점심식사를 위해서 성북평화의 집을 찾아온 할머니들이 봉사자들이 마련한 반찬과 함께 식사를 맛있게 하고 있다.
▲성북평화의 집은 종교를 넘어 공동선 실현을 위한 지역의 작은 불씨로 자리매김했다.
▲이강서 신부와 최 벨라뎃다 수녀, 박화자씨를 비롯해 이날 봉사 온 태릉본당 봉사자들과 함께.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