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폐지 입법, 왜 지지부진한가
"그리스도적 가치관 숨기며 '말 따로 행동 따로' 부끄럽다"
신자 정치인들, 신앙 의지 없이 표 얻기만 급급
흉악범의 사형 당연시하는 사회적 풍토도 한몫
제15대와 16대에 이어 17대 국회에서는 역대 가장 많은 175명의 여야 국회의원이 ‘사형폐지에관한특별법’에 서명해 법안을 발의했다. 이 가운데는 43명의 가톨릭 신자 의원들도 포함돼 있었다. 총 71명의 신자 의원 가운데 60.6%가 사형폐지에 뜻을 모은 것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17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돼 많은 이들에게 아쉬움과 함께 적잖은 상처를 안겼다. 그 상처는 바로 주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예수의 제자가 되는 길을 선택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남겨진 상처다. 신자 정치인들은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걸어가지 않음으로써 자신과 교회에 상처를 입힌 셈이다.
18대 국회에 입성한 신자 의원들 가운데는 사형폐지특별법안이 발의될 때마다 ‘서명’만으로 신자로서의 몫을 한정한 이들도 적지 않다. 국민을 대신해 지난 17대에 이어 18대 국회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민주노동당 대표 강기갑(로베르토·55·마산교구 사천본당) 의원 직격인터뷰를 통해 신자 정치인의 몫을 새롭게 돌아보고자 한다. 신자 정치인들 가운데 강대표를 택한 것은 가르멜 남자수도회에서 수도자로 살다 정치라는 전혀 딴 길을 걷고 있는 그이기에 ‘초보’ 정치인으로서의 진솔함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 강대표님은 열심한 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교회가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 오고 있는 사형 문제에 대해 평소 견지해오고 계신 입장이나 소견이 있으시다면.
악한 일을 저질렀다면 그에 대한 판단과 평가는 윤리 규범이라는 잣대로 할 수 있지만, 최후의 심판은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생명은 사람의 권한의 범위를 훨씬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이 월권을 한다는 건 그 자체가 범죄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언제든 뉘우치고 참회함으로써 새로운 삶을 다짐할 수 있는데 그런 기회와 시간을 빼앗는다는 건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 제15대 국회 때부터 지난 17대 국회까지 세 차례에 걸쳐 사형폐지특별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차원에서 제대로 된 논의 한 번 거치지 못하고 폐기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원인이 어디 있다고 보십니까.
흉악범은 사형시키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우리 사회의 풍토와 가치관의 영향도 적지 않습니다. 표에 민감한 정치꾼들로서는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민을 이용하고 표만 얻을 생각만 하기 때문에 올바른 가치관과 진정성을 가지고 제대로 된 정치를 펼쳐나가기 힘들다고 봅니다.
▶ 사형제도 폐지 의사를 지닌 정치인들도 대부분 실제의 삶이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런 정치인들의 모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톨릭 신자의원 79명과 개신교 신자의원 118명을 합치면 전체 국회의원의 절대다수인 65.9%가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들이 한데 힘을 모아 그리스도적인 가치관을 펼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할 텐데….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공천받는데 급급하고 선거가 끝나면 국민들을 쳐다도 보지 않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게 정치판입니다.
이런 정치인들을 바꾸려면 선거를 잘해야 합니다. 정치는 공기와도 같습니다. 정치에 무관심하기보다 적극적으로 함께할 때 올바른 정치를 펼 수 있습니다. 이럴 때 ‘말 따로 행동 따로’인 정치인들의 행태가 바뀔 수 있습니다. 종자를 잘 선택해야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듯이 선량을 잘 뽑아야 정치가 바뀌고 세상이 바뀝니다.
▶ 지난 17대 국회 때는 민주노동당 의원 전원이 사형제도 폐지에 대해 찬성 입장을 피력했습니다. 이번 18대 국회에서는 사형제도 폐지를 당론으로 채택해 정치권은 물론이고 전 사회적으로 이슈화해보실 의향은 없으십니까.
이런 자리를 빌려 사형제도에 대해 무심했음을 반성하게 됩니다. 민주노동당은 생명존중 환경사랑 인간중심의 가치관에 대해서는 중심이 서있습니다. 때문에 이 문제를 논의하면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공론화해서 당론으로 정해 사형폐지법안 발의가 가능하도록 검토하겠습니다.
▶ 오랜 투신에도 불구하고 생명 문화를 확산시켜 나가려는 교회의 움직임이 일반인들에게는 피부로 와닿지 않는 것도 현실입니다.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나가는데 있어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들려주신다면.
병들고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자식이 있다면 도와주려는 게 바로 부모의 마음이고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교회가,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마음으로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지 먼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적인 가치관이 빛을 잃어가는데도 교회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좋은 것을 새롭게 조명하고 확산시켜 나가려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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