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체험하고 거듭나는 사형수… 꼭 죽여야만 하는가”
사형제는 하느님의 뜻 거슬러 인간의 생명 빼앗는 죄악
“잘못 없다는게 아닙니다… 아픔이 또다른 아픔 낳지 않길”
뼛속까지 파고드는 칼바람이 매서운 어느 날, 경기도 파주 광탄의 한 묘역에 조그만 수녀 한 명이 서있었다. 서른 기 남짓한 묘지를 바라다보는 수녀의 얼굴에서는 짙은 회한이 스치는 듯했다.
무덤 위로 누렇게 시들어버린 풀을 쓰다듬는 수녀의 손길은 마치 자식을 쓰다듬는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죄의 크기만큼 참회도 깊어졌는데…. 그 모습이 참 예뻤는데….”
알듯 모를 듯한 혼잣말을 되뇌는 수녀의 눈가가 붉어진다.
찬바람 속에서 쓸쓸히 발길을 돌리는 이는 다름 아닌 ‘사형수들의 어머니’ 조성애 수녀(77·샬트르 성 바오로수녀회).
조수녀는 사형 문제로 생각이 깊어지거나 가슴이 답답해질 때면 자신도 모르게 사형수들이 누워 있는 묘지를 찾는다. 한두 명도 아니고 서른 명이나 되는 사형수들이 묻힌 이곳은 일반인들에게는 존재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다. 이 묘역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이도 바로 조수녀다. 죽음 후에도 아무도 찾아가려 하지 않는 사형수들의 시신, 어머니의 마음으로 그 마지막 길에라도 함께 하려 나섰던 것이다.
“어떤 형제가 ‘감옥에서 처음 사랑을 받았다’고 말했을 땐 같이 울고 말았죠.”
조수녀의 첫마디는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이 부재한 현실이었다. 사형수들을 ‘형제’, ‘아들’이라고 부르는 조수녀의 가슴에 가장 큰 아픔으로 다가오는 사실도 그것이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크신 사랑으로 지어지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는데 그 사랑을 사형수가 돼서야 알게 되다니…. 그 아픔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1976년 교정사목에 뛰어든 조수녀가 처음 사형수와 대면한 것은 그로부터도 10여년 더 지난 88년이었다. 그는 그 순간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무서웠어요. 처음엔 말도 잘 안 나오고 떨리기만 했어요. 그런데 자꾸 만나서 악수하고 얘기를 나누다 보니 연민의 정을 갖게 되고…. 형제의 본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된 거죠.”
두려움을 떨쳐내고 한발 더 다가서자 변할 것 같지 않았던 사형수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사랑이었던 거죠.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사랑을 표현할 줄도 몰랐고…. 그러는 사이 커다란 잘못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이 전해지자 처음엔 움찔움찔하던 그들도 이내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으로 인해 변해갔던 겁니다.”
조수녀가 사형수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쏟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 모두가 눈감아버리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형수가 사랑을 체험하고 천사로 거듭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 아닌가요. 저도, 사형수 형제도 사랑이 낳은 기적에 놀라게 되고 그것이 곧 하느님으로부터 온 은총임을 깨닫게 될 때 그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를 먼저 사는 게 아닐까요.”
여든을 바라보는 노구의 수녀가 사형제도에 그토록 반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느님을 느끼고 그 사랑의 기적으로 자신과 주위를 변화시켜갈 줄 아는 능력을 지니게 될 때, 그야말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사형이라는 되돌릴 수 없는 행위로 생명을 빼앗는 것은 또 다른 죄악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수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흉악범죄가 정말 그들만의 죄인지 묻는다.
“말 그대로 손에 피 한방울 묻히지 않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일이 우리 주위에 비일비재합니다. 나쁜 놈들은 죽어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버림받은 아이들의 손이라도 한번 더 잡아주고 노숙자들에게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이라도 대접했더라면 이런 가슴 아픈 현실이 줄어들지 않았을까요.”
이런 생각 때문일까, 조수녀에게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사형폐지를 외치는 행사라면 빠지지 않고 찾아가 힘을 보태는 것은 물론, 사형수로 인해 아픔을 겪은 피해자가족들을 찾아다니면서 필요한 도움을 전하며 사형수들을 대신해 용서를 청하는 일도 마다치 않는다.
“그들이 잘못이 없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하느님으로부터 오고 하느님만이 거두실 수 있는 생명을 피조물인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한다는 건 또 다른 아픔을 낳는 일임을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늘도 조수녀는 성당 한켠에서 생명에 대한 사랑과 불완전한 존재에 대한 용서를 빌고 있다. 어느 새 내 마음도 그 옆에 함께 무릎을 꿇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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