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르드는 세속적 가치·기준에 역행하는 곳"
"성모님 메시지의 핵심은 청빈, 기도, 회개, 교회와 성모의 원죄없으신 잉태"
하느님과 이웃에로 이끌때 올바른 성모신심이라 판단
보편교회는 2007년 12월 8일부터 오는 8일까지 1년 동안 ‘루르드 성모 발현 150주년 희년’을 보내고 있다. 희년 동안 9백만명이 넘는 이들이 루르드를 찾았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지난 9월 프랑스 교회 순방중 루르드를 방문해 관심을 모았다. 본지는 희년 폐막에 맞춰 루르드 성모성지 관할 교구장인 쟈크 페리에 주교와 대담을 갖고 희년의 의미와 루르드 성지에 관해 듣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대담은 e-메일로 이루어졌다.
-희년 폐막을 앞두고 루르드 성모성지 관할 교구장으로서 감회가 남다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난 1년을 되돌아보신다면?
▶지난 한 해는 크나큰 기쁨의 해였습니다. 루르드 성모 발현 150주년 희년은 루르드의 메시지가 오늘날에도 완전히 현실성을 띠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 주었습니다. 또한 루르드가 그동안 복음 선포에서 차지해 온 위치를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약 9백만에서 천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루르드를 찾아왔습니다. 물론 단순히 호기심으로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우리의 책임의식을 키워주었습니다.
루르드는 교회와 접촉이 거의 없는 사람들도 찾아올 수 있는 곳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교회 생활에서나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터질 때면 수많은 언론인들이 루르드를 찾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루르드가 전 세계에 주는 교훈은 없습니다. 게다가, 루르드는 전 세계의 다른 수많은 크고 작은 성모성지들과 구별되어서는 안 됩니다. 유럽에는 서쪽의 아일랜드나 포르투갈에서부터 동쪽의 우크라이나와 남쪽의 몰타섬에 이르기까지 스무 개의 성모성지가 하나의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루르드는 유럽과 나아가 전 세계의 성모성지를 연결하는 고리 가운데 하나일 따름입니다.
-세속주의와 탈영성화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합니다. 루르드 성모 발현과 150주년 희년이 현대사회와 현대인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내 생각엔 지난 한 세기 반 동안 프랑스의 지적 풍토는 그리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계몽주의 시대’를 이미 백년 전에 경험했던 그 시대에는 발현과 그 이후의 기적 이야기가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조차도 그러한 현상들이 종교에 해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더욱이, 19세기 중반에 부(富)는 이미 하나의 우상으로 자리 잡았던 터라, 몰락한 수비루 가(家)는 명예롭지 못한 가문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회의주의적 합리주의가 예전에 비해 기세를 떨치지 못하고 있고, 배금주의는 인간을 행복으로 이끌어주지 못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루르드의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완전한 호소력을 지닙니다. 메시지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들이 젊은이들이라는 것을 저는 그 증거로 들고 싶습니다.
언론인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바로 루르드에서 살아있는 교회, 노래하는 교회, 기도하는 교회, 형제애적인 교회, 병자들과 장애인들의 자리가 있는 교회를 만나는 것입니다. 루르드는 공격성도 이데올로기도 없는 반사회적인, 다시 말해 세속화된 사회에 역행하는 곳입니다.
-루르드 발현 성모님의 메시지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와 두 번째 발현, 그리고 마지막 두 번의 발현에서는 성모님께서 침묵하셨습니다. 그것이 메시지의 한 측면일 수 있습니다. 그 외의 모든 발현에서는 성모님께서 베르나데뜨와 말씀을 주고받으셨지만, 베르나데뜨는 성모님 말씀의 일부만 전해 주었습니다. 따라서 루르드의 메시지를 베르나데뜨가 전해 준 일부 말씀에만 국한시키는 것은 매우 부당한 일이 될 것입니다.
메시지의 근본 핵심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요소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청빈, 기도, 회개, 교회 그리고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입니다.
성모님은 루르드에서 가장 비참한 거주지의 하나, 곧 죄수들도 살 수 없을 만큼 불결하여 버려진 옛 감옥으로 당신의 메시지를 전해 줄 사람을 찾아 가셨습니다. 이는 바로 하느님께서 갈릴래아의 어느 이름 없는 마을 나자렛에 마리아를 찾아 가셨던 것과 같습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모든 발현은 기도의 분위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2월 11일, 베르나데뜨는 동굴에서 빛을 보고는 성호를 긋기 위해 묵주를 꺼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성모님께서 먼저 십자 성호를 긋기 전에는 성호를 그을 수 없었습니다. 베르나데뜨는 성모님을 따라 성호를 긋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모님은 손가락 사이로 묵주알을 굴리셨으며,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라고 말씀하실 때 외에는 입술을 움직이지 않으셨습니다. 그 때부터 루르드는 변함없는 기도의 집이 되었습니다.
회개는 루르드의 메시지에서 이음새와 같은 자리를 차지합니다. 회개라는 말이 나타나는 것은 맨 처음도 맨 끝도 아닙니다. 따라서 회개는 그리스도인 삶의 알파도 오메가도 아닌, 결정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모님께서 다섯 번이나 되풀이하여 회개를 요청하셨기 때문입니다.
베르나데뜨는 영웅적인 고행에 대한 취향은 전혀 없었지만, 자신의 전 생애를, 특히 자신의 좌절과 고통을 ‘죄인들을 위해’ 바쳤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는 ‘불쌍한 죄인’인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화해의 성당은 루르드의 중심지의 하나입니다. 우리가 ‘몸을 씻을’ 수 있도록 동굴에서 물이 솟아나왔습니다.
성모님께서 요청하신 행렬과 성전은 교회를 나타내는 두 가지 이미지입니다. 행렬은 바로 그리스도를 따라 걷는 교회, 시간의 종말까지 순례하는 교회입니다. 마사비엘의 바위 위에 세워진 성전은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의 믿음 위에 세우신 교회를 나타냅니다. 성전은 신자들이 기도하러 모이고, 또 가장 위대한 기도인 성찬례를 위해 모이도록 해줍니다.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는 죄와 대조되어 우리에게 계시되었습니다. 동정 마리아는 죄에서 벗어나 계시기 때문에 죄가 무엇인지 아십니다. 또한 죄의 파괴성을 우리보다 훨씬 잘 알고 계십니다. 죄는 언제나 질투를 유발하며, 자기 폐쇄적입니다.
그와 반대로, 은총의 최고봉이신 마리아는 온전한 수용성을 지니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죄인들의 피난처’라 불릴 수 있는 것입니다. 루르드에서는 누구도 자기 죄를 인정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죄인들의 마음에 이렇게 속삭이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루르드는 치유의 기적으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지금까지 보고된 기적 치유 사례가 7000건이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치유는 샘물이 발견된 때부터, 다시 말해 아홉 번째 발현 이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치유는 루르드의 명성에 상당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 왔지만, 근본 핵심에 속하지는 않습니다.
발현이 있던 시기에 루르드에는 몇몇 의사들이 개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치유 사례들은 곧바로 기록되어 조사를 받았습니다. 로랑스 주교는 발현의 진정성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싶어 했기 때문에 철저한 조사를 시켰고, 일곱 번의 치유 사례를 기적으로 인정하였습니다.
뒤이어 치유 사례들이 엄청나게 많았지만, 시성을 위해 로마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그 사례들을 소위 기적으로 인정하게 하려고 애를 쓴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루르드 성모 발현 50주년이던 1908년에 이르러서야 브와사리 박사가 몇몇 치유 사례들을 교회법적으로 기적으로 인정하는 절차를 밟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부터 세밀한 의학적 조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절차가 복잡해졌습니다.
의학적 관점에서 치유의 예외성을 판단하는 곳은 국제 의학 위원회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그러한 치유를 공식적으로 ‘기적’으로 인정하는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바로 치유를 받은 사람이 머무는 교구의 교구장입니다. 그러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교구장은 사건의 영적인 차원을 고려합니다.
-루르드를 찾는 순례자들에게, 그리고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루르드를 순례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특별한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른바 ‘병자’들의 대다수는 노인성 장애를 안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치유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희망을 갖기 위한 힘, 인내할 용기를 얻으려고 루르드에 옵니다.
성모님께 기도하고, 자신의 건강에 대한 걱정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진 모든 걱정을 성모님께 의탁하러 오는 것입니다. 그들은 양로원이나 집에서 세상과 떨어져 사람들을 자주 보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에서 일정 기간을 보내러 옵니다.
복음서에서 성모님의 마지막 말씀은 가나의 시종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사람들을 당신 아드님께로 인도하는 것, 그것이 바로 묵주기도의 목적입니다. 곧, 묵주기도를 한단씩 바칠 때마다 우리는 어린시절부터 영광스러운 부활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삶의 한 모습을 묵상합니다.
우리의 성모 신심이 참된 것인지를 알려면, 성모님께서 우리를 당신 아드님께로 다가가게 해주시는지, 우리를 성령의 감도 아래 있게 해주시는지, 성부의 자녀가 되고 따라서 우리 모든 이웃들의 형제자매가 되는 기쁨을 누리게 해주시는지 자문해 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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