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의 아픔·희망 나눈다
고시생들의 오아시스…
쉼터 제공 외에도 교리시간 마련해 말씀 선포
전현직 법조인 등 저명인사들의 ‘교양강좌’도
11월 27일 제49회 사법시험 최종합격자 1005명 명단이 발표됐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고시촌문화로 대표되는 서울 신림동을 합격과 낙방, 기쁨과 좌절이 공존한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매년 고시촌으로 향한다. 7%의 확률을 꿈꾸면서….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큰 아픔과 고통이 함께하는지 체험해보지 않은 이들은 모른다. 이런 신림동 고시촌에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이들과 함께 아픔을 나누고 희망을 꿈꾸는 고시생의 오아시스 ‘사랑샘’쉼터의 오윤덕(프란치스코·66) 변호사와 부인 권혜옥(마리아)씨를 만나봤다.
#촛불, 어둠 속 등대가 되다
고시학원과 유흥시설의 네온사인으로 번잡한 신림동 고시촌. 그 속에서 심신이 지친 고시생들이 마음 놓고 쉴만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고시생 쉼터의 사각지대인 이곳을 따뜻함으로 밝히는 ‘사랑샘’이 있다.
사랑샘 근처의 학원 학생들이 수업이 끝났는지 삼삼오오 모여 사랑샘으로 향한다. 학생들은 휴게실에 자리잡고 앉아 담소를 나누며 그간의 스트레스를 푼다. 휴게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상담실에서는 오변호사가 한 학생과 상담이 한창이다.
남부러울 게 없는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오씨가 신림동에서 사랑샘을 운영한 것은 벌써 6년째다. 고시를 준비하는 두 아들을 위해 이곳으로 이사했고 문득 이 많은 젊은이들이 낙방의 상처를 위로 받을 공간이 없다는 생각이 이들 부부의 머리에 스쳤다. 그리고 그 젊은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사법시험 평균 합격자 나이가 30세가 넘어요. 그럼 대학을 졸업한 후 5년 이상 제도권 밖에서 홀로 지낸다는 이야기죠. 그러나 국가에서는 이들을 위한 어떤 지원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어요. 국가가 못한다면 나이가 든 사람이 이들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부부는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2003년 2월 28일, 자비를 털어서 한림 법 타운 1층에 사랑샘을 연 것. 지역 내에 고시생들이 쉴만한 장소가 곳곳에 생기긴 했지만 당시만 해도 고시생에게 쉼터는 사랑샘외에 찾기가 쉽지 않았다.
부부는 학생들에게 단순히 쉼터만 제공한 것은 아니다. 고시촌이라는 공간에서 고시공부 외에도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전현직 법조인들은 물론 사회저명인사 등을 초빙해 ‘교양강좌’를 연 것은 물론 오변호사가 직접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과 상담을 하기도 했다.
스터디실도 있어서 필요한 학생들에게는 언제나 공간을 내주었다. 또 교리시간을 마련해 가톨릭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에게 종교의 경건함, 하느님의 은총을 전했다. 교리교사도 전 사법연수원장 김승진 변호사, 가톨릭법조회 전 회장인 강봉수 변호사 등 법조계에서 덕망 높은 인사들로 구성돼 있다. 11월 30일에는 이들에게 교리 받은 학생 12명의 세례식이 있었다.
“세례식을 한 번 하려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몰라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저희가 신경 써야 할 일들뿐이죠. 그런데 이상하죠? 마치 해산하는 엄마의 마음이라고 할까요. 힘들 때마다 다음에는 절대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느 순간에 보면 저희가 또 세례식을 준비하고 있더라고요.”
어려운 시기에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되는 공간이 된다면 어떤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게 부부의 생각이다. 이들 부부에게는 젊은이들과 함께 하는 것 자체가 보람이다.
#촛불, 희망의 춤을 추다
“저 푸른 젊은 날 희망에 찬 큰 꿈을 향하여 확고한 신념과 불퇴전의 용기와 타협 없는 정직과 절제된 인내로써 정신일도하여 끊임없이 매진하였거든 너희는 이미 참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니 그 과정에서 현시되는 세속적 결과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든 그 결과에 매달리지 말라”(오윤덕 변호사의 ‘사랑하는 청년들아’ 중).
사랑샘은 후원회가 없다. 순전히 젊은이들을 위해 오변호사 부부가 모든 것을 내놓았다.
“이곳 고시촌 학생들은 전국의 엘리트들만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저희가 순수하지 않은 마음으로 대한다면 이들이 먼저 알고 사랑샘을 찾지 않겠죠.”
오변호사는 사랑샘을 운영하면서 자신만의 특별한 원칙을 세웠다. 그 중 하나는 사랑샘을 찾는 젊은이들의 이름을 묻지 않는다는 것. 이름과 나이, 출신, 학력 등은 오변호사에게 중요하지 않다. 단지 학생들이 지금 현재 겪고 있는 아픔을 함께하고 싶을 뿐이다. 때문에 사랑샘에서 꿈과 희망을 키우며 고시에 합격한 연수원생들이 후원회를 조직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을 때도 사양했다.
2009년 2월 28일은 사랑샘이 시작된 지 꼭 6년째가 되는 날이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고시촌에서 고시생들을 위해 굳건히 자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부부는 꿈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제가 변호사로서 능력이 있는 한은 계속하고 싶어요. 바람이 하나 있다면 이곳에서 성장한 젊은이들이 나중에 나이 먹어서 다른 젊은이들을 위해 제2의, 제3의 ‘사랑샘’을 마련해 줬으면 해요.”
신림동 고시촌에서 한 부부의 작은 초는 희망의 불빛을 밝히고 있었다.
사진설명
▲'사랑샘'의 휴게실 전경. '사랑샘'에는 휴게실과 더불어 학생들을 위한 스터디실을 마련, 필요한 학생들을 위해 제공하고 있다.
▲휴게실 게시판에는 고시생들을 위한 예비자교리 시간과 고시 공부에 필요한 각종 자료들을 붙여놓았다.
▲사법시험 평균 합격자 나이는 30세 이상. 오윤덕·권혜옥 부부는 대학 졸업 후 5년 이상 제도권 밖엥서 홀로지내는 고시생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사랑샘'을 열었다.
▲오윤덕 변호사 부부가 2003년 2월 28일 문을 연 '사랑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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