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전하러 와서 큰 사랑 받고 떠납니다”
복지·의료 사업과 외국인 사목 등 다방면에 헌신
“그리스도 말씀 따르면 사랑을 체험할 것입니다”
천주교 박해가 심했던 19세기 조선, 이역만리에서 건너 와 목숨을 담보로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심었던 외국인 선교사들의 피땀은 한국 교회를 세우는 밑거름이 됐다. 선교사들의 노력은 2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사랑’이라는 공통분모로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
53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한국에서 복음을 전하며, 특히 대구대교구에서 복지, 의료사업, 사료 정리작업, 외국인사목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헌신하고 이제 고향 프랑스로 돌아가는 파리외방전교회 길젤라 신부(스타니슬라오·Gzella Stanislas·78)를 만났다.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
파리외방전교회에서 1955년 사제품을 받은 길젤라 신부는 곧바로 한국에 파견됐고, 대전교구 예산본당에서 사목활동을 시작했다. 6·25 전쟁이 한반도를 휩쓴 직후였고, 문화절 이질감과 체력적 한계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길신부는 마치 친가족처럼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교우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속에서 사목활동의 큰 기쁨을 맛보았다고 한다.
“힘든 시절이었지만, 사랑의 공동체에서 함께 지냈던 그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가족애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61년부터 예수성심시녀회 담당사제를 맡게 되면서 대구대교구와 첫 인연을 맺었던 길신부는 창설자 고(故) 남대영 신부(Louis Deslandes·파리외방전교회)를 도와 수녀회 소속 성모자애원에서 고아, 장애인, 나환우 등을 돌보며 전쟁 직후 한민족의 수난을 함께 나눴다.
그때 당시 부친의 임종 소식을 접하게 된 길신부. 그러나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어 무척 안타까워 했는데, 성모자애원 식구들이 길신부의 사정을 알고 바자를 마련해 그 수익금으로 길신부의 모친을 한국에 초청할 수 있었다.
“그 분들도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너무 죄송스러웠습니다. 한편으로는 저를 위해 베풀어 주신 사랑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단일 민족에 대한 선입견 버려야”
1997년부터 외국인 사목을 담당하게 된 길신부는 대구 가톨릭근로자회관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문제, 재해 문제, 출입국 관리 문제 등 현실적 어려움을 돌보는 일을 맡는다. 특히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피해를 입는 불법 체류자들을 돌보며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눴다.
길신부는 국내 거주 외국인 수가 우리나라 인구의 1.5%(행정안정부 2007년 발표 통계자료 참조)에 해당하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제 ‘단일 민족’에 대한 선입견은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외국에서는 한민족을 가리켜 오랫동안 성(城)에 갇혀 살아 왔다고 합니다. 지나치게 다른 민족들과 융화하지 못한다는 핀잔의 소리이지요. 물론 지금은 인식이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까지 남아 있는 편견을 해소키 위해 어릴 때부터 올바른 교육이 필요합니다.”
“항상 복음을 가까이 하십시오”
1993년부터 교구 사료담당으로 봉직한 길젤라 신부는 은퇴 직전까지 2011년 교구설정 100주년을 앞둔 대구대교구의 교구사 편찬사업에 힘썼다.
한국 신자들이 교회 역사에 무관심하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길신부는 고개를 저었다.
“최근 활발히 진행 중인 성지 발굴 및 보존화 작업, 최양업 신부님을 비롯한 124위 순교·증거자 시복·시성 운동을 예로 든다면 교회의 역사에 대한 한국 신자들의 큰 관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평신도들의 손으로 세워진 만큼 한국 신자들의 신앙 열정은 다른 나라 교회에 모범입니다.”
길신부는 마지막으로 후배 사제들과 교구민에게 복음의 중요성에 대해 당부했다.
“언제나 성경을 가까이 두고 그리스도와 하나될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을 잘 따르고 실천한다면 분명히 하느님의 큰 사랑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순교자들의 정신을 따라 지금의 신앙 열정을 지켜 나가시길 바랍니다.”
■ 길젤라 신부는
1930년 출생한 길젤라 신부는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에서 1955년 5월 사제품을 받은 뒤 같은 해 12월 입국, 대전교구 예산본당에서 공소사목을 담당하며 한국에서 첫 선교를 시작했다.
1961년 예수성심시녀회 담당사제로 활동하면서부터 대구대교구와 첫 인연을 맺은 길신부는 19년 동안 수녀회의 기틀을 다지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길신부는 이후 1979년부터 83년까지 대구가톨릭대학병원 초대 부원장, 86년까지 교구사 편찬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1986년부터는 자인본당, 논공가톨릭병원, 지례본당 주임을 맡으며 지역복음화에 힘을 쏟았고, 1993년부터 현재까지 교구 사료 정리작업을 도맡았으며, 97년부터 현재까지 외국인 사목을 담당했다.
12월 3일 오전 11시 주교좌 계산성당에서 송별 감사미사를 봉헌하며 53년의 한국 선교사업을 마무리한 길신부는 파리외방전교회 규정에 따라 내년 1월 프랑스로 돌아간다.
◎길젤라 신부 송별 감사미사
“반세기 교구 복음 전파 위해 헌신”
대구대교구는 12월 3일 오전 11시 대구 주교좌 계산성당에서 길젤라 신부 귀국 송별감사미사를 봉헌했다.
이날 미사에는 대구 조환길 총대리 주교 및 교구 사제단 이외에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인 전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사제 등 1000여 명이 참례해 길신부의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했다.
조환길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힘든 여정임을 알면서도 길신부님은 복음 전파를 위해 온갖 고난을 이겨내며 반세기 동안 교구에서 헌신하셨다”며, “우리도 주님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희생하는 선교사의 정신을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흥 몬시뇰은 송별사에서 “생명을 바치는 것 이상의 큰 사랑은 없다”며 “교구를 위해 목숨 바칠 각오로 헌신하신 길신부님과 파리외방전교회의 은혜에 교구민을 대신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미사 중에는 교구장 최영수 대주교의 감사패가 전달됐으며, 길신부가 주임으로 봉직했던 자인·지례본당 교우들을 비롯한 교구 사제단, 수도회, 교구민의 예물이 봉헌됐다.
길젤라 신부는 준비한 영상편지를 통해 “아직 더 베풀지 못한 것에 대한 걱정은 하느님께 맡기고 떠납니다”라며, “언제나 밝은 미소로 따뜻한 사랑을 전해준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라고 말했다.
사진설명
▲길젤라 신부는 53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한국에서 복음을 전하며, 대구대교구에서 복지, 의료사업, 사료 정리사업, 외국인사목 등을 펼쳤다.
▲대구대교구는 12월 3일 오전 11시 대구 주교좌 계산성당에서 길젤라 신부 귀국 송별감사미사를 봉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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