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쪽 문이 닫히면 하느님께서는 다른 한 쪽 문을 열어주신다’고 하였던가? 농사도 지을 줄 모르는 신부가 농사를 짓겠다고 덤빈 덕분에, 그것도 농사짓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야콘을 짓겠다고 설쳐댄 탓에 가을수확은 많은 교우들을 실망시켰지만 오히려 그것이 보약이 되었다.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을 팔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가공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또 어디로 불려갈 지도 모르겠지만, 야콘은 당뇨와 변비가 있는 분들에게 매우 좋은 식품이고 각종 미네랄 성분들이 많고 맛도 좋아 최고의 건강식품이다.
그래서 만든 것이 야콘 잎으로 만든 분말 차, 환, 칼국수 그리고 구근으로는 야콘 즙, 효소, 건조 칩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 최초로 ‘우리 밀로 만든 야콘라면’을 개발하여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울진, 춘천, 용인, 남원, 옥천 전국 팔도를 다니며 상품개발을 위해 애쓴 결과 어느 새 나는 ‘야콘 전문가’ ‘야콘 전도사’ ‘야콘 대부’ ‘야콘 박사’ 같은 별명을 갖게 되었다.
교우들은 야콘이 변신을 거듭한다고 놀라워하고 나의 형편없는 농사실력은 ‘사업수완’으로 그나마 보충되었다. 야콘은 뛰어난 효능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인지도가 부족하기에 무엇보다 홍보에 열을 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야콘에 관해서는 논문, 인터넷 자료, 방송 자료 가릴 것 없이 닥치는대로 구하여 알린 결과 드디어(?) 소식이 하나 날아왔다. 대구 식약청에서 이곳 시청 위생계로 지시가 내려온 것. 논산의 ‘하늘땅사랑농장’(www.skylandlove.org)에서 과대 과장 광고를 하고 있으니 조사를 하여 결과를 보고하라고 하였나 보다.
아니 내가 무슨 사기꾼인가? 논문이나 방송자료를 인용한 것뿐인데 과대 과장 광고라니. 그런데 담당 공무원하시는 말씀, 그것도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나?
어찌 되었든 ‘초범’이고 ‘공익’을 위하여 일한 것이기에 비록 내가 작성은 하지 않았지만 ‘반성문’ 비슷한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사목을 어떻게 하냐고 걱정을 하시지만, 이제 우리 본당에서 이 둘은 서로 별개가 아니라 하나다. 내 개인적으로도 사복을 하고 농장에 가서 또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본당에서의 피로를 농장에서 풀고 농장에서의 피로를 본당에서 푼다. 교우들도 처음에는 농장에 나오는 분들이나 나오지 못하는 분들이나 모두 힘들어 하였지만, 이제는 모두가 제 몫을 하고 있다. 농장에 나오시는 분, 본당 판매를 나가시는 분, 이것도 저것도 못하시면 무엇하나라도 사주시는 분. 우리 본당 교우들은 모두가 ‘주특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집에 있어도 몸이 아프고 농장에 나가도 힘이 드는데, 농장에 나가지 않으면 마음까지 아프니….
이 본당에서 임기는 아직 많이 남았는데, 몇몇 분들은 벌써부터 걱정이다. 본당 신부 임기가 끝나면 농장은 어떻게 될까? 우리 신부 다른 본당에 가면 농사짓고 싶어서 어쩌나? 어느 분은 내가 오랫동안 농사도 짓고 사업도 하고 싶어하다가 여기에 와서 비로소 꿈을 펴고 있다고까지 하시는데, 사실 내가 처음부터 계획한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니 마무리도 세우신 분이 하시겠지.
이원무 신부 (대전교구 논산대교동본당 주임)
그동안 집필해 주신 이원무 신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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