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에 부임하자마자 당장 신자들의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가정 방문 및 구역 미사를 시작하였다.
첫째 날. 혼자 사시는 할머니 댁을 방문하려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맨 처음 나의 시선을 뚫고 들어오는 것이 있다. 탁자가 있고, 그 위에는 기도하기 위해 준비된 십자가와 초 그리고 나의 방문을 환영한다는 ‘사랑합니다. 신부님’이라는 글귀, 그리고 반지케이스가 놓여있다.
기도를 마치고 반지케이스는 왜 놓여있는지를 묻자 할머니는 “본당이 리모델링을 해서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말을 들었어요. 저는 기초생활수급자이기에 본당에 봉헌할 돈이 없어요. 그래도 무언가를 하긴 해야 하는데… 대신 저의 작은 정성을 드립니다.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돼요.”라고 하신다. 할머니도 살림이 어려우실 터인데 이렇게 본당을 위해 희생하시고 도와주시니 나는 너무도 행복했다. 그날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말이 “할머니, 눈물 참느라고 너무 힘들었어요. 다음부터는 절대 그러지 마세요.”
그 며칠 후. 나는 방에서 고해성사를 주고 있고 건너편 거실에서는 신자들의 노래 연습이 한창이다. 구역미사의 퇴장성가를 연습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아무리 들어도 불협화음(?)만이 내 귀를 스친다. 고해성사가 끝나고 나서 거실에 이동하니 나이 많으신(?) 어른들만이 가득하다. 그래도 기쁜 미사가 되기 위해서는 “노래 연습을 다시 해야겠어요. 퇴장성가 00번 펴보세요.” “그 정도면 70대분들의 목소리에요. 최소한 45세는 되어야지요. 다시 한 번 해보지요.” 같은 노래를 8번씩이나 반복해서 연습 했다.
“수고하셨어요. 이제 30대 여인의 목소리가 되었어요. 그럼 미사 시작하지요.” 힘든 노래연습이었지만 아무런 불만 없이 기쁘게 해주신 분들의 마음에 감사한다. 20분을 계속해서 연습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에도 묵묵히 나의 지도에 응해주셨던 분들에게 너무도 감사한다. 자신의 한계를 생각하기 보다는 신부에게 협조해 주시는 어르신들이 너무도 존경스럽다. “그래도 목소리는 좀 더 다듬어 주셨으면 하는데요. ////”
그 후 또 다른 날. 가정방문을 나갔더니 방문하는 집 앞에는 나를 기다리는 자매님들 6명이 와 계시다. 함께 그 신자가정을 방문하고 다음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자매님들 역시 나와 동행을 하신다.
“친한 신자분의 집이기에 함께 방문을 하나보군.” 2번째 집 방문이 끝나서 3번째 집으로 향한다. 또 자매님들은 나를 졸졸(?) 따라서 오신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 집 신자와는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같이 가면 어쩌지.…” 하지만 그날 자매들을 마지막까지(?) 나와 동행을 했다. 왜 그럴까? 나중에 듣고 보니 이곳 자매님들은 너무나 사이가 좋고 친숙해서 각 가정의 상황은 물론 속사정도 모두 알고 있단다. 마치 초대교회 공동체처럼(사도 2, 46) 모든 것을 함께 나누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끔은 아주 은밀한 이야기도 있음을 생각해 주시면 어떨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날. 구역미사 후에 나눔 시간에는 음료 한 가지와 먹을 음식 한 가지만 준비하라는 지침(?)속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래야 어려운 사람들도 자신의 집에서 기꺼이 미사를 봉헌 할 수 있으니까. 그날 미사가 끝나고 담소를 나누며 간단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상이 펴지고 음료수가 나오고 떡이 나온다. 그런데 떡은 한 가지이지만 종류는 5가지다.
“음식은 한 가지만 준비하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음식을 준비 했는지. 저는 먼저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구역식구들이 함께 좋은 시간을 가지세요.” 구역장이 집으로 돌아서는 나는 붙잡으며 “그래도 신부님이 오시는데, 어떻게 한 가지만 준비할 수 있는지…” 신부에 대한 신자들의 존경심과 따스한 마음에 머리가 숙여진다. 너무도 감사하고 행복하다. 집에 돌아와서 “내가 좋아하는 떡도 상에 있었는데…”
구역방문을 무사히 마치며 역시~~ 본당신부의 행복을 다시금 체험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