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축구공 시게 차면 바다에 풍덩 빠져 부요?”
가족들부터 이런 질문을 하는 걸보면 사람들의 인식 안에 ‘섬’은 좁고 동그란 형태를 가진 조그만 땅덩어리 또는 바다 한 가운데 우뚝 솟은 산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이런 질문이 농담 반 진담 반이라는 것은 잘 알지만 섬이라는 특별한 환경에서 ‘신자들과 함께 아름다운 나날들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 아닌 고민(?)은 신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말끔히 해소됐다.
압해도. 누를 ‘압’, 바다 ‘해’, 섬 ‘도’를 쓴다. 말 그대로 이 섬에는 바다를 지배하고(누르고) 살아온 위대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 위대함 안에 하느님의 섭리와 손길이 숨쉬고 있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우뚝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위대한 대열(?)에 참여하는 것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찾아온 어려움은 바로 운전이었다. 운전은 남들 하는 만큼은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매번 섬에 들어올 때나 나갈 때나 배에 차를 싣는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적어도 차를 후진시켜 배에 실어야 한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도대체 어느 선이 사람이 다니는 통로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것도 모르고 도선을 했냐고 철부선 직원들에게 타박부터 들어야 했다.
그것보다 더 힘든 부분은 물때를 맞추는 일이다. 육지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을 직접 감수해내야 했다. 모든 일정은 배 운항 시간에 따라야 했다. 일출을 보며 육지로 나간 뒤, 일몰까지는 무조건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2005년 9월 7일 압해도로 부임했는데, 그 당시 나는 광주평화방송 라디오 ‘사제와 함께하는 복음 나눔’이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매주 한번은 녹음을 위해 육지로 나가야 했고, 그럴 때마다 배를 타고 오가는 일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육지에서는 오직 차 한 대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됐는데, 섬 안에서는 그런 작은 편리함마저도 누릴 수가 없었다.
특히 명절 때는 이마저도 꼭두새벽부터 서두르지 않으면 배를 탈 수가 없다. 요즘 유행하는 모 코미디언의 말처럼, “섬에서 명절 지내봤어요? 안 지내 봤으면 말을 하지 말아요”라고 말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수많은 사람과 차들에 떠밀려 기다리고 또 기다려서 겨우 승선하기가 일쑤였다. 이렇게 답답하고 힘든 세월을 어떻게 견디며 살 수 있을까?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초보에게는 너무 가혹한 현실이었다.
오직 뱃길이 아니고서는 육지에 갈 수 없는 불편한 현실. 그러나 이 상황은 사제인 내게 ‘오직 예수’라는 신앙의 진리를 몸소 체득하게 해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변해가고 있다.
두 공동체 모두 합해도 신자수가 겨우 150여 명이 될까 말까한 작은 공동체. 그러나 이 안에는 여러 가지 불편함과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신앙을 지키며 아름다운 삶을 꾸려 나가는 형제자매들의 혼이 서려있다.
신앙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형제자매들과, 그들 안에 함께 살아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곳. 바로 ‘환상의 섬’ 압해도다.
정대영 신부 (광주대교구 압해도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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