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흠’투성이다. 연약한 한계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파스칼이 인간을 두고 ‘팡세’ 1절 첫머리에서 ‘생각하는 갈대’라고 한 말은 그래서 옳다. 우리는 생각하기에 위대하지만 모두 나약하기 그지없는 존재다.
어린 시절에 혼자서 어두운 골목길을 걸을 때 우리는 참으로 무서웠다. 수술대 위에서 수술을 하는 사람도 큰 두려움을 느낀다. 중요한 시험을 앞둔 수험생의 마음이 두근 두근댄다. 입사 면접을 앞둔 청년도 마찬가지다. 우린 모두 나약하다. 겉으로는 매우 강하게 보이는 사람이라도 사실 그 내면에 들어가면 작은 어려움에도 두려워하고 쩔쩔매는 인간상을 발견할 수 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을 이야기 할 때 그 병(病)은 나약함의 병, 부족함의 병이다.
필자도 영성을 접하면 접할수록 나 자신이 유아에 지나지 않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부를 하고, 묵상을 하여 하느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나 스스로가 참으로 보잘 것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머니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그런 상태가 바로 유아다. 나 자신도 하느님께서 당장 생명을 거두면 아무말 없이 따라야 하는 존재다. 당장 내일이라도 당신이 원하면 생명을 내놓아야 한다.
따라서 인간은 서로 상대방의 아픔을 보듬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 모두가 약하고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깨진 항아리다. 쉽게 깨졌지만 서로 기대서 그 깨진 부분을 메꿔야 한다. 서로 도와주고 치료하고 보살펴 줘도 될까말까 한데 우리는 상대방의 항아리를 더 깨트리려 한다. 여기서 필요한 성향이 바로 ‘연민’(compassion)이다. 우리는 상처가 많다. 따라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깨어진 항아리의 상처는 보듬어져야 한다. 우리는 이해하고 용서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이해받고 용서받아야 한다. 용서를 청하고 용서를 받고, 용서를 받고 용서해야 한다.
이제 정리해 보자. 지난주와 앞에서 말한 ‘합치’(congeniality) ‘융화’(compatibiliyt) ‘연민’(compassion)은 모두 ‘역량’(competence)에 가 닿는다. 마음으로부터 합치, 융화, 연민이 있어야 세상을 향한 참된 인간 역량을 발휘하게 된다. 마음으로부터 하느님과 합치되지 못하고, 주변 상황과 융화되지 못하고, 이웃과 나 자신에 대한 연민도 없다면 그것은 오직 인간 중심적인 것이다. 하느님께 정향된 것이 아니다. 인간 스스로 지닌 참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 네 가지는 우리가 삶에 대해 귀를 기울이는 우리의 능력을 지원해 준다. 또한 이 네 가지는 우리의 전 존재가 통합을 지향하도록 이끌어 간다.
합치, 융화, 연민, 역량은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의 소유자들이 아니라 청지기들이다. 맡겨진 것을 지킬 뿐이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매일의 일상생활 한가운데서 하느님의 놀라운 은총을 필요로 하는 창조물들이다. 하느님의 창조는 지금도 계속된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창조는 계속된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해 육체는 인간의 모습으로 성장해 나간다. 정신도 학업을 통해, 사회생활을 통해 계속 성장한다. 영적 힘도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휘된다. 하느님이 내 안에 처음부터 심어주신 합치, 융화, 연민의 능력이 계속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례 받았다고 해서 일순간에 완벽한 신앙인이 된 것은 아니다. 영적 스승과 영적 지도자, 이웃, 책, 개인의 노력 등을 통해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이 영성이다. 우리는 창조되었지만 미완성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계속적인 성장(지속적 형성, on-going formation)에로 초대하신다.
이를 위해서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합치, 융화, 연민, 역량에 대해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오만한 마음이 이 네 가지의 성향들에 귀 기울이는 우리의 능력을 차단한다. 늘 오만을 경계하고,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물론 하느님은 오만에 의해 우리가 장애를 겪는다고 해도 변혁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신다. 그리스도는 성령의 힘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만에서 풀려나 새로운 삶을 가져다주는 것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방법을 드러내 보여 주신다. 우리는 자신감을 가지고 하느님께 귀를 기울이면서 삶을 통합적으로 살아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귀 기울이면 우리는 삶의 모든 것에 대해서 감사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일상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하느님과 합치 속에서 바라보고, 이웃들과 친교로 살라는 부름으로 파악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영성적 삶을 살아가는 3단계, ‘삶-생명에 귀 기울이기’의 핵심이다. 삶-생명에 귀를 기울여라. 그럼 소리가 들릴 것이다. 여기서 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들리는 소리에 언제나 ‘예’를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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