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뭘 할 거지?”
막 미사 해설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두 눈 가득 사랑 담은 형제가 묻는다.
가을걷이 끝낸 흙 밭에 천막성당을 지어 첫 미사를 봉헌하고, 해설자도 독서자도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성인, 청년, 학생미사의 해설자와 독서자들이 모여 발음, 발성, 독서와 해설의 기본자세 등등을 배워가며, 주일이면 봉사자가 부족해 몇 명이 돌아가면서 두세 번 미사 해설 또는 독서하던 6년 전 일이 엊그제 같이 생생하다.
“수녀님이 계시지 않으니 모두가 수녀님이라는 생각으로 성실히 봉사해 달라” 하신 주임 신부님의 말씀에 따라 모두가 성심을 다했다.
본당에서 봉사하던 그 때만큼 기도를 간절히 해본 적이 있었을까 싶다. 7500여 교우들에게 혹 디딤돌이 될지언정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하고 많은 실수에는 본당공동체의 기도가 용서해 주었고, 교우들의 칭찬은 교회를 위한 봉사직에 격려가 되었다.
본당 봉사를 할 때, 주님은 내게 25시간을 주시지는 않았지만 시간을 풍요롭게 채워주셨고 건강을 주시지는 않았지만 견딜 힘을 주셨고 수험생이던 아이 셋이 소위 일류 대학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자랑스럽게 해주셨고 내게 능력은 없지만 살아오면서 쌓은 경험들을 알뜰히 활용하게 해주셨다.
지나온 세월 어느 하나도 주님 눈밖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선함은 선함대로 부족함은 부족함대로 당신 앞에서 빛이 나게 해주셨다. 나는 그저 주님 앞에 존재할 따름이었다. 주님 앞에 서 있기만 하면 그분께서 쓰시고자 하는 모습대로 쓰셨다.
돌이켜보면 직암 권일신 성조를 비롯한 초기 천주교회 지도자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지 열정적인 사제를 따라 본당에서 봉사하던 그 때가 참으로 은총과 평화의 시기였다. 그저 고맙고 고마울 따름이다.
간혹 비가 흩뿌리는 손끝 시린 겨울 저녁 어스름.
자, 이제 뭘 하지?
또 누가 알겠는가? 바야흐로 바오로의 해도 무르익어 가는데 선교의 깃발 들고 길에 나설지…, 은총과 평화의 샘물을 길어 올려 온 세상을 적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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