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에 대한 교회의 입장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환자에 대한 기본적인 간호 행위와 영양 및 수분의 공급 등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수단’(ordinary means)의 의료행위는 언제나 윤리적 의무이다. 그러나 최선의 의학적인 노력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이 임박한 말기 환자에 대한 단순한 연명 장치로서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등과 같은 ‘예외적인 수단’( extraordinary means)의 사용의 중단을 허용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허용’하는 것이지 ‘권장’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치료의 중단이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말기 환자에 대한 연명 치료의 중단은 환자의 자율성과 환자 및 가족 등 관련 당사자들의 양심 안에서 조심스럽게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생명의 복음」(1995년)은 말기 환자에 대한 ‘무의미한 연명치료’, 또는 ‘예외적인 수단사용’을 ‘과도한 의학적 치료’라는 다른 말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과도한 의학적 치료’란 “예상되는 어떠한 결과에도 부적절하거나 또는 환자나 가족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기 때문에 더 이상 환자가 처한 실제적인 상황에 맞지 않는 의학적 치료 과정”을 말한다.
이를 달리 말해 의료 집착적 행위라고도 표현한다. 이에 대하여「생명의 복음」은 “분명히 죽음이 임박하고 피할 수 없을 때, 사람은 양심 안에서 ‘비슷한 경우의 환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정상적인 간호를 중단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결과가 불확실하고 큰 부담이 되는 생명의 연장밖에 보장하지 못하는 종류의 치료 행위를 거부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도한 의학적 치료(예외적인 수단, 무의미한 연명치료, 의료 집착적 행위)는 환자의 원의와 가족의 상황에 따라 조심스럽게 거부될 수 있지만, 환자에 대한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치료는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계속되어 가능한 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죽음을 맞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최선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러한 배경에 의하여, 교회는 ‘안락사’와 ‘존엄사’를 구분하여 안락사에 대해서는 단호한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생명의 복음」에서 “안락사란 죽음을 조절하여, 정해진 시간 이전으로 앞당기는 것이며, 자신의 생명이나 타인의 생명을 ‘편안하게’ 끝맺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논리적이고 인간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안락사를 잘 살펴보면 무의미하고 비인간적인 행위임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인위적인 행위로 인해 죽음을 초래하는 모든 종류의 안락사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천명한다.
그러므로 이 번 판결은 회복 가능성이 전혀 없는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지할 수 있다는 판결이지 소극적 안락사를 인정한 것이 아니다. 안락사를 인정한 것으로 확대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 편, 말기 환자에 대한 연명 치료 중단을 결정할 때에는 환자의 자율적 결정권이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환자의 치료 중단 의사가 ‘분명하고 확실한’ 증거 에 근거하기 보다는 “추정”에 근거하고 있다. 이번 경우처럼 ‘추정’을 하다보면, 환자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번 판결은 성급한 면이 있었다고 보인다.
교황청이 이미 지난 1980년, ‘안락사에 관한 선언’에서 “자신을 죽여 달라는 중환자들의 간청이 안락사에 대한 진정한 바람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것처럼, 오히려 환자의 이러한 간청을 지속적인 도움과 사랑을 구하는 또 다른 바람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훈련된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성직자와 자원봉사자가 죽음이 가까운 환자의 다양한 육체적 증상에 대한 치료와 함께 정신적, 영적인 도움을 주는 호스피스에 대한 관심과 ‘호스피스 완화의료제도’의 정착을 통하여 품위 있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노력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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