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사단 군종참모 생활을 한 지 6개월째이다. 길지 않은 참모 생활이지만 군종신부로서 새로운 직책과 역할 속에서 보람이 있는 많은 생활이 되고 있다. GOP와 GP를 오가며 만나는 군인들은 참으로 자랑스럽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젊은 친구들이다. 오늘은 성탄절 전날! 크리스마스 이브 날이다. 아기 예수님의 따뜻한 성탄의 기쁨이 그들에게 가득 가득 전달되었으면 바람을 가져 본다.
11월 말 경에 VISION CAMP를 주관했다. 책임 참모라 3박4일 동안 수십 명의 군인들과 함께 동고동락을 했는데, 모든 일정을 마치고 난 뒤에 긴장이 풀려서인지 몸살 감기에 걸렸다. 목덜미가 며칠 써늘해지더니 본격적으로 열이 나고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서 며칠 앓아누울 지경이 되었는데 내일이면 주일인데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 주일을 어떻게 지내나 하는 걱정이 가득했다. 주일 아침에 옷을 주섬주섬 입는데, 무슨 속옷을 무얼 입을까? 생각을 하던 차에 야전 상의 속에 있는 일명 ‘깔깔이’(방상내피)가 눈에 들어왔다. 잽싸게 그것을 입고 성당엘 갔다.
미사 전에 고해성사를 드리고, 겉옷을 벗고, 보라색 대림 제의를 입으려다 보니, 아뿔싸 누런색의 ‘깔깔이’가 자꾸 제의 밖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미사 시간도 다 되었고, 하는 수 없이 일단 제대에 가서 시작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하려고 팔을 들 때마다 ‘깔깔이’가 보이는 것이었다. 순간 이마에서 땀이 날 정도로 아차! 싶었다. 왠지 모를 부끄러운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몸이 아파, 한기도 들고 해서 껴입은 ‘깔깔이’ 이지만 복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제대 위에 서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깔깔이’는 군인들이 겨울에 겉옷 속에 바쳐 입는 방한용 동내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동내의를 보일 정도로 입고 미사를 드렸으니, 이제는 몸도 마음도 동시에 아파왔다. 독서 말씀을 듣기 위해 자리에 앉았는데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일단 몸은 따뜻하구나! 역시 추운 날씨에는 ‘깔깔이’가 최고야! 군종신부는 옷을 입더라도 속옷까지 싹 군용으로 입어야 제멋이지! 하며 위안 아닌 위로를 하며 그렇게 주일 미사를 드렸다. 미사 후에 군인 가족들과 함께 차를 함께 마시며 한기를 이길 수는 최고의 옷을 하나 발견했노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속에 바쳐 입은 ‘깔깔이’를 보여주며, 아! 글쎄 이 녀석이 얼마나 따뜻한지 오늘 미사 때는 정말 추운 줄 모르고 미사를 드릴 수 있었노라고 말이다. 가족들은 군종 신부의 그런 모습을 보고, 위로를 하듯 “참 멋져 보입니다!” 라고 찬사를 보낸다. 함께 군인으로, 군인 신자로, 군인 가족으로 살아가는 그들이 있어 참 좋다. 참고로 추운 날씨에 군인들이 야외에서 초병들이 근무를 설 때 입는 옷을 보면, 온도에 따라 입는 옷들이 정해져 있다. 동내의, 방상내피(일명 ‘깔깔이’), 목토시, 벙거지 장갑, 스키복, 내피가 든 근무용 군화 등이다.
몸이 추우면 마음도 춥다 했던가! 아니 마음이 차가워 겨울이 이렇게도 더 춥단 말인가? 겨울에는 군 생활 중에 추위로 인해 힘든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사람 사는 데는 더 매서운 추위, 곧 차가움이 있는 듯 하다.
그것은 무관심과 선입견, 나 몰라라 하는 마음이 아닐까? 사람들이 내 뿜는 차가움의 바람은 북풍한설 보다 더 뼈 속을 엔다.
어쩌면 매번 ‘VISION CAMP’를 마칠 때 마다 몸이 아픈 것은, 함께 생활하는 병사들이 짊어지고 살아온 우리 사회의 무관심, 불만스러운 관계, 선입견 등에서 오는 차가움 등을 함께 호흡을 하고, 몸이 반응한 것은 아닐까? 병사들 가운데는 마음이 아픈 이들이 있다. 그들의 여린 마음을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 안는데, 아직도 경상도 머슴아의 사랑 방식은 아직도 서툴다. 애만 쓰고 따뜻함을 잘 풀어내지 못해 마음이 굳어 몸이 아픈 것은 아닐까?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겠지만, 주위를 살피며 사는 마음은 온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 것이다. 군인들이 입고 있는 누런 ‘깔깔이’는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최고의 내의임에 틀림이 없다. 관심은 누런 ‘깔깔이’를 황금색 ‘깔깔이’로 변화시키는 최고의 묘약이 될 것이다. 우리 가운데 오신 아기 예수님의 성탄은 우리에 대한 하느님 아버지의 관심이고, 배려이고, 사랑이다. 예수님도 겨울철 군인들을 만나시면 ‘깔깔이’를 입지 않으실까? 상상해본다.
병 생활(90년도) 중에 세 번의 겨울을 지내며 젊은 시절 군 생활 중에 입었던 추억의 그 ‘깔깔이’가 군종신부가 된 지금에도 따뜻함을 더해 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군복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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