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날,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에 동기들로부터 새해 인사 메시지가 왔다. 신학교에서는 늘 함께 어울리던 동기들이었지만 사제가 되어서는 만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전화조차도 여유가 없던 차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한 동기 사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는 상대의 목소리가 그리 밝지 않았다.
“무슨 일 있어? 목소리가 왜 그래?” / “아니야. 일은 무슨 일........” / “그런데 목소리가 왜 그래?” / “그냥 힘들고 피곤해서.......” / “왜 그래. 무슨 일 있지?”
동기는 그저 아무 일 없다는 말만 했다. 그런데 통화가 이어지다 보니 사제로 살아가기에 자신이 많이 부족 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동기에게 ‘누구는 사제로 살아가기에 완벽해서 살아가는가? 모두 똑같이 부족한 인간인데. 이런 부족함에도 사제로 불러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살아야지. 주님은 우리의 부족함을, 우리가 살아가면서 실수도 하고 잘못을 할 것이라는 것을 우리보다 더 잘 알고 계시니 실수와 잘못이 있다 해도 주저앉기 보다는 의탁하고 노력하면서 살아야지. 주님께서 우리를 사람답게 살아가라고, 봉사하며 살아가라고 사제로 부르신 것이니 주님께 감사드리며 열심히 살아가자’고 얘기했다. 하지만 과연 나 자신은 어떤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연 부르심대로 살아가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통화 후 다음날의 복음이 떠올랐다.
당신이 누구냐고 묻는 이들에게 세례자 요한은 그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대답 했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인물 중 세례자 요한 보다 뛰어난 이는 없다고 주님께서 칭찬하시지만 정작 그 자신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만 대답 하였다. 또 자신은 앞으로 오실 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한다. 그런 세례자 요한을 보며 나 자신을 돌이켜 본다. 나는 과연 세례자 요한처럼 나에게 맡겨진 직무들을 잘 실천하고 있는지 반성해 보았다. 가야 할 길이 많고도 멀게만 느껴진다.
광야. 삭막하고 넓은 들판 아무도 없는 곳, 아무도 듣지 않는 곳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아무도 듣지 않는 곳에서 외친다는 것이 참으로 허무하다고 생각될 수 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듣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외친다는 것이 참으로 비현실적인 것 같다. 그런데 이렇듯 광야에서 외치는 이는 바로 내가 모시는 주님이심을 깨닫는다. 더구나 세례자 요한도 주님을 위한 소리라고 자신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당신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위해 끝까지 자신의 소명을 다하신 주님. 그런 주님을 위한 소리라고 표현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보며 나는 너무도 갈 길이 참 멀기만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제로서 이제 겨우 일 년(만으로는 아직 6개월 밖에 살지 못했으면서)을 보냈는데 힘들다고 어렵다고 투덜거렸던 모습들, 겸손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떠올리며 주님께 죄송하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사제로서 처음 맞이했던 지난 성탄. 지금껏 아름답고 화려한 곳이 아닌 동물들이 생활하는 누추하고 더러운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을 미처 몰랐었다. 왜 이런 곳을 선택하셨는지 몰랐었다. 나는 온돌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자면서, 온기 하나 없이 추운 마구간 구유에 아기 예수님을 모시면서 그저 성탄이 다가왔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이번 성탄은 나에게 특별히 다가왔다.
누추하고 허름한 마구간. 주님을 모셔도 되는가 싶은 곳에 주님께서는 오셨다. 주님께서 누추하고 허름한 마구간에 오셨다는 것은 부족하고 지저분한 나의 마음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하지 못한 내 자신에게 주님께서 내려 오셨다는 것을 마음 깊이 깨닫는다. 사제로 살아가기에 참으로 많은 부족함과 누추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제는 힘들거나 어렵다고 투덜대기보다, 나의 실수와 잘못으로 인해 주저앉기보다, 더럽고 누추하지만 그런 나에게 오시어 언제나 나와 함께 해주시는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시 한 번 결심을 세워본다. 넘어졌다고 울며 쓰러져 있기보다 울더라도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나를 잡아 일으켜주시려고 오신 주님을 믿고 그분께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 노력할 몫이 ‘소리’로써 살아갈 몫인 것을 깊이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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