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인간, 그리고 신앙인
“정직·성실로 참된 ‘부’와 ‘나눔’ 함께 실현해야”
돈은 소유자의 활용에 따라 약이 되고 독이 되기도
재화 사용은 자신 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선익 돼야
한번 왔다가 다시 가는 인생살이…. 돈 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돈이 있어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 돈이 있어야 인간으로서의 품위도 유지할 수 있다.
의식주 해결에서부터 자아 실현에 이르기까지 돈 없는 인간 생활을 상상할 수 없다. 돈 없이 어떻게 책을 사 볼 수 있겠는가. 또 돈 없이 어떻게 기도를 위해 초를 살 수 있겠는가. 이렇게 돈은 인간을 위해 꼭 필요하다.
그런데 이 돈 때문에 부모 자식, 형제들, 친우들, 친지와 이웃들 사이가 원수가 될 수 있다.
또 돈 때문에 죄를 짓고, 가정불화가 생기고, 이혼도 한다. 돈 때문에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을 수 있고,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한다.
▨ 세상의 부자(富者)를 꿈꾸는 인간
인간이 돈에 집착하는 이유는 돈이 주는 편리함과 돈의 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돈만 있으면 만사를 해결할 수 있고, 무슨 일이든 거침없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돈이 없으면 병원 입구에서 죽어도 할 말이 없다. 소위 말하는 재권(財力), 금력(金力) 금권(金權)의 힘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위력을 행사한다.
그래서 정정당당한 승부와 결과보다는 돈을 매개로 한 부정한 수단과 방법이 만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사회 풍토가 만연하면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망연자실해 할 수 밖에 없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양심과 진실이 외면당하는 사회는 결코 모든 이가 공존하고 공생하는 사회가 될 수 없다.
▨ 진정한 부자(富者), 예수
그럼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돈을 사용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이 돈을 정직하고 유익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어디서 발견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세상에 오시어 완벽한 삶을 사셨던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을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시어 낮춤과 비움의 길, 겸손과 완전한 의탁,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 등을 보여주셨고, 또 스스로도 가난의 길을 걸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참된 부(富)를 깨달아야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일생은 외형적으로는 보잘 것 없고 가난하신 모습 그 자체였지만, 실제로 그분 자신은 어떤 부자 못지않게 정신적 풍요와 만족을 누리셨다. 예수님은 일정한 금전과 재화를 직접적으로 소유하시지 않았지만, 부족한 것도 미래에 대한 근심걱정도 없이 당신 생애와 활동을 부요하게 장식하셨다.
그 분은 죽어가면서도 휴식과 안식의 자리를 얻지 못하고 갈기갈기 찢긴 상처뿐인 육체를 겨우 눕히고 군중 앞에 높이 매달릴 십자가라는 형틀만을 소유하셨다. 하지만 그 마음의 부유함으로 인해 실제적 궁핍은 모든 이를 구원으로 이끄는 충만한 성사가 될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은총의 선물로 인간을 부유케 하기 위해 하느님 아들이라는 절대적이고 존엄한 조건의 우월성과 지고함을 내세우지 않으신다. 여기서 우리는 재물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확신과 근거를 발견하고 실천해야 할 힘과 용기를 얻어야 한다.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이 가난의 길을 걷기를 원하신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원하는 부자청년에게 그 분은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당신을 따르기를 원하신다(마르 10, 17-22).
하지만 인간 삶을 지극히 괴롭히는 가난과 빈곤은 분명히 퇴치해야 할 악(惡)이다. 예수님은 재화의 무소유 정신을 당신이 만난 모든 이에게 무작정 요구하지 않으신다. 그 분은 부자들과도 친분을 유지하며 물적 도움도 받으셨다. 사도 베드로와 사도들은 선박들을 소유하였고, 그것을 이용하여 고기를 잡았다(마르 4, 35-41; 6, 45-52). 예수님은 결코 사유재산 자체를 단죄하지 않는다.
그 분은 사유재산 제도에 기초를 둔 사회적 구조 속에서 사셨고, 그런 제도를 존중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 분은 정신적으로라도 타인의 것을 탐내고 강탈하며 탈취하는 것이 죄스런 행동이라고 단죄하신다(마르 7, 20-23; 마태 5 ,27-28; 15, 18-20).
다만 부자의 재물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데 장애물이 될 수 있고 위험요소가 될 수 있을 뿐이다. 실제로 재산에 대한 지나친 욕심과 관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질식시킬 수 있다(마태 13, 22).
더구나 부자 미식가가 화려한 향연을 베풀면서 온갖 쾌락을 즐길 때에, 가난한 자는 그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조각도 얻지 못한다면, 이때 이 부자는 자신의 재산을 형제애를 실천하는 기회로 사용하지 못하였기에 결국 재물 때문에 하느님을 배반하고 구원까지 상실하는 심각한 상황에 떨어지게 된다.
인간에게 축복과 행복을 보장하는 것으로 이해된 재물은 이성(理性)을 마비시킬 정도로 신뢰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모든 경계와 주의를 부의 축적에만 몰입시키게도 한다.
많은 곡식을 쌓아 둘 큰 창고를 짓고 낟알을 넣어 두었던 부자가 그 날 밤 생명을 잃게 되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루카 12, 16-21), ‘부자와 가난한 나자로의 비유’(루가 16,19-31)를 관찰하면 세속적 재물에 탐닉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헛된 것인지가 잘 드러난다.
▨ 돈의 딜레마, 그 해답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청백전(청년 백수 전성시대), 사오정(45세 정년퇴직)의 시대에 살고 있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삶의 황금기를 우울하게 보내고 있으며, 많은 가장들이 가정의 위기를 지친 두 어깨로 버텨내고 있다. 그럼에도 정치 경제 분야의 그 어느 지도자들도 스스로의 목소리만 높일 뿐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 무게는 고스란히 이 시대의 청년과 가장들이 떠 안아야한다. 돈이 없으면 참으로 고통스럽다.
돈은 참으로 좋은 것이며, 돈을 많이 소유하는 것도 훌륭한 일이다. 돈의 소유자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돈은 약이 되기도 하고 생명과 삶을 파괴하는 독약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돈을 사용해야 할까. 돈은 정직하고 근면한 노동을 통해서 생긴다. 그러나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재화를 사용하는 것은 모든 이의 공동 권리에 속한다. 따라서 개인의 돈이라도 만인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기본정신을 가져야 한다(노동하는 인간 14항).
변화하는 사회의 환경과 민족들의 정서와 문화에 따라 소유권의 형태는 다양할 수 있겠으나, 재화의 보편적 목적은 언제나 동일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누구나 재화를 사용할 때에는 합법적으로 소유하는 외적 재산이라고 하더라도 사유물(私有物)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공유물(共有物)로 보아야 한다. 바로 자신에게 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유익과 선익이 되도록 사용해야 한다(사목헌장 69).
외적이고 물질적인 재화이든 정신적인 재능이든 하느님께로부터 풍성한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은 자기의 인격완성에 그것을 활용하고, 하느님 섭리의 봉사자로서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어머니와 교사 119).
복음적으로 사는 가난한 이는 성령을 통해 점진적으로 부자가 된다. 그리스도인에 있어 가장 완전한 가난의 순간은 죽음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자로서 빠스카적 성사를 통해 세상의 악한 권세와 죽음을 이기시고 세상을 구원과 해방으로 인도하셨다.
극도의 가난과 궁핍은 한 인간을 도둑으로 만들 수 있다. 또 지나친 부의 소유는 사람들을 교만에 빠지게 할 수 있다. 오늘날 과도하게 부에 집착하는 이들은 역설적으로 말하면 정신적으로 혹독하게 가난에 시달리는 이들이다.
돈은 자체로 악이라거나, 가난은 무조건 선하다고 보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오류이고 편견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소유한 돈을 제대로 이용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방치하는 것도, 쓸모없고 헛된 일에 써대는 것도 모두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이다. 한 인간이 소유한 돈과 정신적 재능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자신과 이웃, 사회를 위해 요긴하고 유익하게 사용되고 관리되어야 한다.
인간이 사는 목적은 무엇인가? 동물적 생존을 위해 살고, 또 그런 것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이 목적일 수만은 없다. 인간의 처지에서 사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관심사항, 곧 하느님과 이웃사랑을 실천하면서 자신을 완성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어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여 돈을 버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래서 이 목적을 위해 돈을 사용해야 한다. 이 목적을 위해 돈을 쓰는 사람이 하늘에 재물을 쌓는 진정한 부자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