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땅에서의 복수 그리고 전쟁”
성지 이스라엘서 펼쳐지는 살육
죄 없는 어린이·여성들이 표적
지도자들 이익 위해 사태 방관
포성이 더욱 커졌다. 중동 화약고에 다시 붙은 불길은 좀처럼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무고한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다. 죽고 죽이는 전쟁의 상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기에 전쟁의 끝은 언제일지 두렵기까지 하다.
이스라엘과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정치조직)의 분쟁으로 시작된 가자지구 전쟁. 너무나도 거룩하고 숭고한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슬픈 소식이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그저 멀고 먼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매년 1월 1일 발표된 ‘세계 평화의 날 담화’를 다시 새기며 전쟁이 하루 빨리 끝나고 화해와 협력을 통해 평화가 정착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세계 평화의 날 담화는 평화를 염원하는 우리의 기도를 청하고 있다.
저는 특별히 하느님과 인간이 만난 복된 땅, 평화의 임금님이신 예수님께서 생활하시고 돌아가셨다가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거룩한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제35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담화가 발표된 2002년에도, 60여 년 전인 1948년에도 그랬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그 곳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간직하고 있는 땅이라는 사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과 하마스의 대응은 해를 넘겨 계속되고 있다. 자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전쟁이라고 말 하지만 복수는 복수를 낳고 있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종교의 다름이 전쟁과 복수의 한 이유였기 때문이다. 그 거룩한 땅에서….
민간인들은 보호받기는커녕, 흔히 적군의 일차 표적이 됩니다. 피비린내 나는 분쟁에서 죄 없는 어린이와 여성, 아무런 무기도 없는 노인들이 고의로 표적이 되어 온 끔찍하고 잔혹한 장면들이 너무도 많습니다.(제33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지난해 6월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하자 이스라엘은 모든 국경을 봉쇄하고 하마스 체제의 고사작전에 들어갔다. 때문에 150만명으로 추정되는 가자지구 주민들은 그동안 식량과 의약품 등 생필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민간인들의 피해는 지난 해 말 이스라엘의 공습과 지상군 투입으로 더욱 늘고 있다. 1000명 가까운 사망자 중 민간인이 상당수 포함돼 있으며 특히 어린이 희생자가 많은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영문도 모른 채 공격을 당해 부모와 친구를 잃고 병상에 누워 울부짖는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온 몸에 폭탄을 둘러 멘 자살폭탄대원들의 모습과 아이들이 오버랩되는 화면은 전쟁이 곧 인류의 패배로 가는 길임을 보여준다.
전쟁은 또 다른 전쟁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깊은 증오심에 불을 지르고, 불의의 상황을 조성하며,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짓밟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인류의 패배입니다. 오로지 평화 안에서, 평화를 통해서만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할 수 있고, 그 누구에게도 넘겨 줄 수 없는 인권이 보장될 수 있습니다.(제33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20세기 인류 역사에 오점을 남긴 1, 2차 세계 대전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우리 또한 일제에 의해 2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았고, 결국 동족상잔의 비극까지 낳았다. 중동에서 한창인 오늘의 전쟁 또한 마찬가지다. 로켓을 쏴 올리고 전투기를 띄우며 애꿎은 민간인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대신 그들이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 대응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우리는 이미 20세기에 충분히 경험했다.
불안정한 그 곳의 상황은 국제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권력 행사 방식을 진정으로 개혁하고 그들 민족의 복지를 보장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평화를 앞당길 수 있을지 생각하기조차 어렵습니다.(제36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물론 유엔의 휴전 결의안이 채택되긴 했지만 세계 경찰국임을 자임하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은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사태를 방관하고 있다. 자국의 영토에 로켓탄이 떨어지고 비행기가 공습을 한다면 과연 방관할 수 있을까.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이라는 씻을 수 없는 테러와 전쟁의 주인공격인 초강대국 미국의 휴전결의안 표결 기권은 평화를 저버린 행동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이 평화를 선포하는 일은 ‘우리의 평화’(에페 2, 14)이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일입니다. ‘평화의 복음’(에페 6, 15)인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을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마태 5, 9 참조)이 되게 하는 참된 행복으로 이끄는 일입니다.(제37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지구촌은 여전히 전쟁 중이다. 새해 첫날, 가자지구 뿐 아니라 세계 50여 곳의 분쟁지역에서는 총성이 울리고 폭탄이 터졌다.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제 지구촌에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도록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벽에 기대어 공포에 떠는 팔레스타인 아이의 눈물이 곧 우리 아이의 눈물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다. 평화를 선포해야 할 사명을 갖고 있다.
■ 가자지구는 지금
1만 5천여 명 난민 발생
식량·의약품 지원 시급
국제 카리타스에 따르면 가자지구 전쟁으로 인해 현재 1만 5000여 명의 난민이 발생했으며 56개 병원 중 3개만 운영 중이다. 물 공급이 중단된 것을 비롯해 주민의 80% 이상에게 긴급한 식량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예루살렘 카리타스도 이동진료소와 보건소 운영을 위한 기본적인 의약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내용의 긴급구호요청서를 12월 30일 국제카리타스에 전해왔다.
국내 해외원조기관도 국제 카리타스, 팔레스타인 현지 구호단체 등과 긴밀히 연락을 취하며 피해 주민들을 돕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다음은 한국 카리타스가 1월 9일 홈페이지에 소개한 예루살렘 카리타스 클로데뜨 하베쉬(Claudette Habesch) 사무총장의 국제 사회 지원호소 인터뷰.
▶가자지구의 상황은 어떠한가?
- 가자지구에 대한 군사 행동이 더욱 극화되어 이전 보다 훨씬 더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했다. 우리는 매일 너무나 끔찍한 소식을 듣고 있다. 어제 적십자사 직원은 이스라엘 군의 폭격으로 인해 사망한 어머니 시신 옆에 누워 있는 4명의 어린이 시신을 보았다고 한다.
▶가자지구 내에서 카리타스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 가자지구 내 카리타스 병원과 6개의 진료소, 1개의 이동진료소를 통해 기초적인 의료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의사 6명을 비롯하여 간호사, 자원봉사자들이 헌신적으로 피해자 지원을 펼치고 있다. 카리타스 병원은 공습으로 인해 접근이 어려워 진료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어 현재는 이동진료소를 통한 지원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며칠 동안 카리타스 이동진료소는 유엔 학교에서 150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가장 긴급하게 지원이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가?
카리타스 이동진료소를 위한 의약품 지원이 필요하며, 다음 주 월요일 유엔을 통해 물품을 공수할 예정이다. 카리타스 진료소는 다른 병원들과 협력하여 의료 지원 및 식량 원조를 진행할 계획.
▶예루살렘 카리타스의 향후 활동 계획은 무엇인가?
전 세계 카리타스 회원기구와 연대해 가자지구의 피해자 4천가구를 대상으로 미화 2백 만 달러 규모의 식량 및 의료 지원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피해자들을 위한 지원을 계획하고 있으며, 공습을 경험한 아동을 대상으로 심리 상담을 제공할 예정.
▶가자지구 내 본당과의 협력은 어떠한가?
예루살렘 카리타스는 현재 가자지구 내 본당 신부가 본당기금을 활용하여 주변의 피해자들을 위한 긴급 지원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본당을 통해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무슬림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나?
우선 국제 카리타스 긴급구호 사업에 동참하고, 각자의 상황 안에서 평화 구축을 위한 정치적인 행동을 촉구해주길 바란다. 또한 기도 중에 우리 모두의 성지인 이 땅에서 고통 받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 무슬림, 유대인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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