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을 직접 만들기 전에는 세상의 모든 소금 맛이 모두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짠 맛’ 외에 다른 맛을 가진 소금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동체 어르신들의 의견은 달랐고, 나는 ‘무식하지만 용감하게’ 이를 확인하고 싶어졌다.
가는 곳마다 닥치는 대로 소금을 먹어봤다. 오래 묵힌 소금도 맛보고, 갓 생산한 소금도 한줌씩 입에 넣어봤다. 그리고 놀랍게도, 지역마다 염전마다 소금 맛이 약간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끝 맛이 약간 달짝지근한 소금도 있다는 것이다.
최고의 소금 맛이다. 한 줌 입에 넣으면, 자연적인 감촉이 혀에 와 닿는다. 곧이어 신선하고 담백한 맛이 입안 전체에 향기로운 여운을 남긴다.
여운이 사라질 때 즈음, 입에서는 침이 솟아나며 식욕을 불러일으킨다. 감히 인공 조미료는 따라올 수 없는 ‘자연의 맛’이다.
분명한 것은, 몇 년 묵힌 소금은 입안에 들어올 때 그 소금이 주는 독특한 자극마저도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소금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공정을 가져야 하는데, 그 중에서도 탈수과정을 꼭 거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금이 좋은 맛을 내려면 나트륨 함량을 줄여야 하고, 우리 조상들도 몇 년에 걸쳐 간수를 제거함으로써 맛좋은 소금을 보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같은 이유로 7월이나 8월의 여름 소금이 좋은 것은 그 시기의 열지수가 높고, 자외선 지수가 낮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비교적 빠른 시간에 소금이 생성되고, 또 나트륨 함량도 현저히 낮아진다. 자연을 만드신 위대한 하느님의 섭리는 너무나도 오묘하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나트륨 함량을 줄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27도 이상의 간수를 마련해 소금을 간수에 담근 후, 간수가 빠지기를 적당히 기다려서 탈수기에 넣고 5분 정도의 탈수과정을 거치면 된다.
그러나 아무리 서둘러도 한 포대의 소금이 탄생하기까지는 족히 20분 이상은 걸렸다. 특히 이 모든 과정을 인력으로 소화하다보니, 칠순을 넘겨 어언 팔순을 바라보시는 어르신들에게는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가장 고역인 것은 30kg의 소금 포대를 간수에 담갔다 꺼내는 과정이다. 간수를 머금은 소금은 50kg에 육박할 정도로 무겁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중노동이 따로 없다.
이렇게 해서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탈수 천일염’이 탄생했다. 이제 소금을 판매하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그 소금을 가장 먼저 구매한 고객은 바로 소금을 만들기 위해 고생했던 우리 공동체 어르신들이었다. 의아한 생각이 들어, “왜, 집에 소금이 없소?”하고 물었더니 창고에 가득 쌓여있단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대답이 걸작이다.
“오~매! 신부님!! 소금 갖다가 10년을 묵혀놔도 요로코롬 안대지라. 소금이 하도 좋아서 서울 간 우리 새끼들한테 보내줄라 해요.”
자식들에게 가장 먼저 챙겨주고 싶을 정도로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소금. 바로 우리 압해도본당 공동체가 만든 ‘탈수 천일염’이다.
정대영 신부 (광주대교구 압해도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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