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도 ‘생명외침’ 꺽지 못했다
14일부터 사제단 릴레이 철야기도 … 예언자적 소명으로 참여
16일 새벽 3시. 미산리 골프장 건설 사업을 위한 경기도의 산지 전용 허가를 막고자 지난 14일부터 교구 사제단이 무기한 릴레이 철야기도를 시작한 경기도청 앞.
매일 2~3명의 사제가 노숙하며 기도하게 될 노숙 사제관(?)이다. 훈훈한 차에서 내려서자마자 매서운 바람이 휘감는다. 축축하게 젖어 얼어붙은 콘크리트 보도블록, 한바탕 눈이라도 퍼부을 것 같이 무겁고 깜깜한 하늘, 코끝 에이는 겨울 찬바람에 비명 가득한 바람막이용 비닐, 스산한 소리와 앙상한 모습으로 무섭게 선 시커먼 가로수들과 휘황한 불빛과 함께 굉음을 내며 간간히 지나가는 자동차들.
이불 무덤 모양새로 두 사람 같아 보이나 누군지 알 재간은 없다. 잔뜩 웅크리고 누워 코만 간신히 보이고 코끝으로 허연 입김만 새 나오며 바람과 비닐, 자동차 소리 사이로 추위에 떠는 숨소리만 가늘게 떨려온다. 낯선 사람의 새벽 방문에 오히려 도청 경비실 청원경찰이 긴장하고 살피며 묻는다.
아침 7시. 먼 하늘이 밝아 온다. 차와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주변. 석유난로 두 개에 불을 지피고 밤 새 시렸던 몸을 녹인다. 변변한 벽도 지붕도 없기에 난로 코앞만 따스할 뿐 온몸 시리기는 마찬가지다. 노숙 사제 세 명은 배고픔과 망가진 매무새 가다듬을 기척조차 수월치 않다. 수많은 방문자들이 가져온 따스했던 먹을거리들은 엄동설한에 꽁꽁 얼어붙어 떨어지지도 않는다.
오후 2시. ‘미산 골프장 건설 철회’ 피켓을 든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지금 도청 회의실에선 골프장 용지의 산지 전용 허가 관련 경기도 도시계획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한1,23)가 되고자 모인 교구 사제 70여 명과 교우 700여 명이 바라는 마음은 오직 하나.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그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자고, 그리고 욕심 때문에 불의하게 채우지 말자고 외치기 위해서였고 얼어붙은 손으로 묵주기도를 바쳤다. 겨울 매서움을 피할 곳 없는 도청 정문 앞 간이 공원을 가득 메운 ‘외침’들이다.
그러나 결국 경기도는 조건부 가결을 택했다. 자연, 생명, 정의, 그리고 수많은 ‘외침’을 외면한 채, 한강유역환경청의 사업 부적합 지적에도 불구하고 사업자 제출 자료와 경기도 자체 심의 기준을 근거로 가결시켰다.
저녁 9시. 다시 밤이 왔다. 이젠 추위도 느껴지지 않는다. 도시계획위원회의 조건부 가결로 지난 6년여의 소망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시민대책위와 사제단, 평신도대표들은 분주하다. 이제 다른 국면으로 치닫게 되는, 그래서 어쩌면 더 길어질지도 모를 예언자적 소명에로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매주 금요일마다 대규모 기도모임을 가져야 하고, 언제 끝날지 모를 사제단의 릴레이 노숙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모든 이들에게 알리고 모든 이들이 외치고 모든 이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힘을 모으기 위한 다짐과 분주함이 커졌다.
한 소리가 외친다.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한 소리가 말한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이사4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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