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탈수기를 장만하고도 기쁨에 겨운 것은 잠시. 걱정거리는 끝이 없었다.
당장 탈수기를 비롯한 제반 시설비용을 마련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날이 갈수록 필요한 물품들이 하나둘씩 늘어가기 시작했다. 그 동안의 투자비용도 시골 본당 수준에서는 만만치 않은 부담이었는데, 앞으로도 비용이 더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심란했다.
크고 작든 간에, 사업을 벌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은 돈이었다.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그렇다고 일확천금을 꿈꾸며 복권을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휴~” 그저 나오느니 한숨뿐이었다. 본당신부를 바라보는 ‘흰머리 소년소녀’들의 순박한 시선 때문에 그나마 한숨도 마음 놓고 쉴 수도 없었다.
무조건 열심히 기도하고 지혜를 청하면서 동분서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돈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 작은 것부터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간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염전에서 거둬온 소금을 탈수기에 돌려 질 좋은 탈수염을 생산할 수 있게 됐으나, 자연스럽게 소금에서 발생하는 간수가 문제였다. ‘어떻게 포장해서 보내야 소금을 받으시는 분들이 완전히 간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란 고민이 끊이질 않았다.
본당 신자들은 무조건 질기고 저렴한 비닐 포대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염화나트륨인 소금이 비닐 포장에 들어가면 나쁜 화학 작용을 일으킬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게다가 소금을 만드는 우리나, 또 소금을 구입하는 소비자나 모두가 하느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들 아닌가! 사람이 먹는 음식을 함부로 유해한 포장지에 담을 수는 없었다. 그러는 가운데 본당 신자들의 애정 어린 불평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리 신부님은 아는 것이 병이여~.”
“그냥 쉽게 생각하면 될 텐데, 뭘 저렇게까지 고민하실까? 우리만 그러는 것도 아닌데 말이여~.”
하지만 포장지만큼은 꼭 고집하고 싶었다. 결국 유해하지 않으면서도 품질 좋은 포장지를 찾기 위해 직접 뛰어다녀야 했다.
광주와 여수를 거쳐 서울 청계천 시장까지 이 잡듯 헤집고 다녔다. 하느님께서는 이번에도 우리 공동체에 무한한 은총을 베푸셨다. 마침내 저렴하면서도 질 좋고, 유해성분 없는 포장지를 구할 수 있게 됐다.
우리의 땀으로 만든 천일염을 안전한 포장지에 넣고, 또 예쁜 디자인까지 입히니 아주 그럴듯해 보였다. 이제 전국에서도 압해도본당의 소금 포대는 질기면서 물에 젖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 번은 비 오는 날 광주 시내의 어느 성당에 소금을 팔러 갔는데, 본당 신자들 왈 “비가와도 끄떡없는 소금은 전국에서 압해도본당 천일염뿐이요, 또 이렇게 비 오는 날 소금 팔러 다니는 사람도 세상에 신부님밖에 없을 것이요~”라며 신기해했다.
정대영 신부(광주대교구 압해도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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