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에 대한 경외에 찬 믿음 필요
초월 위기(Transcendence Crisis)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위기 상황을 맞을 때가 많다.
위기는 말 그대로 위험한 상황 그 자체일 수 있다. 하지만 위기도 다르게 보면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하느님께서 나를 새로운 차원으로 초월시켜 주실, 형성시켜 주시는 기회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위기를 ‘초월 위기’라고 부른다고 했다. 위기를 그저 위기로만 받아들이면 이는 나 자신 속에 이미 형성되어 있는, 초월의 기회를 잃게 된다. 이렇게 되면 돈과 명예, 오만한 욕심 등에 매몰되는 삶, 즉 하느님의 뜻을 외면하는 삶(deperciative Abandonment)을 살게 된다. 하지만 위기를 초월의 기회로 받아들이면, 하느님의 뜻을 ‘인정하는 기투’(Appreciative Abandonment)의 삶을 살게 된다. 인정하는 기투의 삶이란 지난 주에 말했듯이 나 자신을 버리고 온전히 하느님 뜻에 내어 던지는 것을 말한다. 이럴 때 진정한 영적 성장이 가능하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런 인정하는 기투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판단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판단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우리는 매 순간 판단하고 살아간다. 오늘 점심에는 무엇을 먹을까. 일기예보에는 비가 조금 온다고 했는데 우산을 쓰고 나갈까 말까. 모두가 평가이고 가치판단이다. 우리는 모든 일에 일종의 값을 매기고 좋은 값을 따라간다. 그것이 바로 ‘사정’(Appraisal)이다. 정부의 사정기관은 공무원 및 단체들이 옳게 행동하고 일을 잘하는지 감사하는 기관이다. 여기서의 사정은 바로 그 사정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여러 사람으로부터 정보를 듣고, 그것을 지성으로 이해해서 나름대로 정리, 실행에 옮기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사정은 보통 지성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사정은 이처럼 지성에 의지한다.
교통사고가 났다고 가정해 보자. 그 즉시 우리들의 지성은 왕성한 활동을 시작한다. 차가 어떻게 부셔졌고, 과연 누가 신호등을 어겼는지, 또 무엇이 잘못돼 이런 일이 생겼는지 등을 생각한다. 이때 생각은 대부분 내가 불리하지 않은 쪽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내가 잘못한 부분을 최소화시키고, 상대방이 잘못된 부분을 크게 만든다. 과연 옳은 것일까. 나와 관련된 모든 교통사고가 과연 내 잘못이 없는 것일까.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일반적인 사람과 똑같이 지성 작용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의미가 없다.
우리는 모든 것을 영적으로 시작해서 영적으로 끝내야 된다. 하루 일과도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내야 한다. 삶의 위기가 왔을 때, 이를 지성적 판단으로만 해결하려 할 때 그 위기는 오히려 더 수렁에 빠질 수 있다.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하려고만 하면 그 방어벽은 쉽게 뚫린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내면 상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인정하는 기투의 삶이다. 초월 위기를 형성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물론 이런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 이런 삶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선 먼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말로만의 ‘믿습니다’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동의하는 그런 믿음이 있어야 한다. 몇몇 영성가 및 수도자들은 “하느님은 우리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신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늘 좋은 일만 일어나길 원하신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태도 또한 인간적 욕심이 들어간 것이다. 그저 하느님께 맡겨야 한다. 그래서 하느님 뜻이 이 세상에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경외(Awe)에 찬 믿음이 필요하다. 즉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믿음에 대한 경탄과 동시에, 하느님 뜻에 어긋남에 대한 두려움을 느낌이 필요하다. 과거를 돌이켜 보라. 내가 어려울 때 늘 하느님은 나와 함께 계셨다. 하느님은 늘 우리가 초월의 삶을 살길 원하신다. 구약에서 신약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끊임없이 불의한 삶을 살며 많은 고통스런 사건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하느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시고 인간을 초월시켜 주시고, 극복시켜 주신다.
참으로 경외하지 않을 수 없는, 즉 경탄하며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하느님이다. 이제는 위기가 생기면 방어하기에만 급급하지 말자. 우선적으로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을 갖자. 그 경외할 하느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을 믿자.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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