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뜻 찾는 영적 자세 필요
이번 주에는 주제를 조금 달리해 지성(知性)과 영(靈)에 대해 생각해 보고 넘어가자.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지성은 사람들마다 차이를 보인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지성의 수준은 다르다. 초등학생과 이 글을 읽는 사람의 지성은 분명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차원이 다른 것이다. 더 나아가 덕을 쌓은 사람과 덕을 쌓지 않은 사람은 어떤 한 사건을 바라보는 지성의 작용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8차선 도로에서 접촉사고가 났을 때 하는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의 지성 수준도 알 수 있다.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이 지성은 영적 성장에 참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성경 주해서를 읽어가며 공부를 하고, 신학을 공부하고, 교회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약성경 안에 깃든 하느님 섭리를 체험하기 위해선, 구약성경의 시대적 배경과 주요 텍스트들에 대한 주석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처럼 지성의 작용은 영성 성장에 있어서 중요하다.
특히 묵상은 지성을 이용해 기도를 하는 것이다. 묵상에는 많은 지성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 묵상의 단계가 깊어지면 성녀 대 데레사에 의하면 ‘단순함의 기도’(능동적 관상으로 단순화되고 애정 있는 묵상)로 발전한다. 이 단순함의 기도는 지성적 묵상에서 관상으로 넘어가는 다리역할을 하는 기도다. 그냥 성경을 읽기만 해도 좋고, 그냥 십자가를 바라만 보아도 좋다. 이런 상태에서 하느님에 대한 영감이 떠오른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이 모든 것이 지성적인 묵상 단계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신비적 영감을 느끼는 단계의 시작은 지성인 셈이다. 지성에 의한 추리적 묵상은 우리를 관상으로 이끈다.
문제는 이러한 관상의 상태는 그리스도교인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수준 높은 경지에 도달한 비종교인 문학인이나 예술가들도 누구나 이러한 관상의 상태를 체험할 수 있다. 지성적 상태를 뛰어 넘는 신비스러움은 신자이건 비신자이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과거 산속에서 소위 도(道)를 닦았던 도사나 유학자들도 이러한 상태를 느꼈을 것이다.
신자가 아닌 이들도 명상할 수 있는 것은 왜 그럴까. 그들도 신앙인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영을 지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을 깨닫게 하는 하느님의 엄청난 능력에 의탁할 경우, 하느님께선 세상의 많은 사건들을 통해 우리에게 초월적 방법으로 깨달음을 주신다.
물론 세상에는 많은 불공평하고, 이해할 수 없고, 조화스럽지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 억울하게 송사를 당할 수도 있고, 이유없는 시기, 질투,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교통사고가 난 후, 내가 아무리 사랑과 친절을 베풀어도 상대방은 아프지 않은데도 보상금을 위해 땅바닥에 드러누울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상태가 충분히 예상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사실 자체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하느님의 뜻이 언젠가는 드러날 것이라는 경외의 마음을 갖고 머묾과 주위를 기울이면서 차분하게 하느님의 뜻을 찾아가는 영적 자세라 할 수 있다. 이것을 나는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영적인 인간만이 취할 수 있는 자세인‘예! 하고 응답하기’라고 부른다.
‘예’라고 말하면 불편하고, 상처받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칠 수 있다. 큰 불이익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형성하는 신적 신비, 나를 당신께로 형성되도록 미리 마련하신 그 신비를 믿고 끊임없이 ‘예’라고 대답해야 한다. 성모님이 그랬고, 십자가 죽음을 앞둔 그리스도가 그랬고, 모든 성인 성녀들이 그랬다.
인간은 앞에서 말한대로 영적인 존재다. 그래서 영성을 강의하는 많은 사람들이 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어렵게 이야기할 것 없다. 많은 이들이 발하는 영은 여기서 ‘궁극적 의미를 찾고자하는 힘’이다.
모든 인간은 누구나 지성을 갖고 있고, 세상 사람들은 그 지성을 이용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반드시 신앙인만이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신앙을 가지지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지성은 궁극적 의미를 찾는데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마지막 단계에서 궁극적 의미로 이끄는 것은 영이다. 우리는 이 영의 작용을 더 깊은 차원으로 스며들게 해야 하고,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
-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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