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의 빈곤모자 가정과 장애인들을 위해 한국 카리타스는 지난 2004년부터 집중 지원 사업을 전개해오고 있다. 방글라데시 북서부 디나즈푸르(Dinajpur) 지역에서 마련된 사업현장 체험에 한국 카리타스 후원회원들과 동행한 가톨릭신문은 한국 교회 지원이 결실을 맺은 현장의 모습과 양국 카리타스 협력 의미를 3회에 걸쳐 보도한다.
정월대보름 둥근 달이 고개를 내밀었다. 수도 다카(Dhaka)로 진입하는 도로. 뒤엉킨 차와 릭샤(3륜 인력거), 수많은 사람들로 어수선한 거리는 아랑곳 않은 채 달은 거기에 떠 밝게 웃고 있다. 장애로 힘겨운 삶을 살면서도 손을 흔들며 이방인을 반기던 아이들의 크고 동그란 눈망울, 새 집이 생겼다며 밝게 웃던 시골 아낙네의 모습이 꼭 저 보름달과 닮았다. 촛불 하나에 의지해 밤을 지새울 그들의 보금자리에도 저 달이 밝은 빛을 드리워주길….
한평생 겪었을 고난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비비쟌(Vivijian). 55세 정도라 추측할 뿐 정확한 나이는 자신조차 모른다. 남편을 잃고 사촌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사촌동생 역시 과부. 쭈그려 앉아 있던 그녀가 먼 나라에서 온 방문객을 보고 몸을 일으켰다. 한 사람 한 사람 빼 놓지 않고 두 손을 꼭 잡는다. 손님을 맞기 위해 깨끗이 정돈된 집. 2007년 이 집을 얻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한국 신자들이 마련해 준 것이다.
“비비쟌씨는 25년 동안 저런 곳에서 살았습니다.”
방글라데시 카리타스 직원 몬투(Montu)씨가 집 한 켠 짚더미를 가리킨다. 움막이라는 단어도 아까운 볏짚더미. 비가 오면 비를 맞아야 하고 바람이 불면 날아가 버릴 그런 곳이다. ‘어이구 저런 곳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탄식이 절로 나온다.
“밤에 춥지도 무섭지도 않고 편안합니다. 우기(雨期)에는 비도 피할 수 있고요. (한국에 돌아가시면) 꼭 고맙다는 제 인사를 전해주세요.”
병으로 일은 할 수 없다. 마을 주민들이 그때그때 도움을 줘 생계를 유지하는 삶. 하지만 새 집은 굴곡진 그녀의 평생 안에서 유일한 희망이다.
희망을 둘러봤다. 14.16㎡(약 4.3평) 작은 공간이지만 더할 나위 없이 아늑한 보금자리다. 물결모양 함석판 지붕은 빗물과 이슬을 막아주고 베란다(현관복도)는 비가 들이치는 걸 막고 가축을 기를 수 있는 공간이다. 벽면은 대나무로 엮어 세워 겨울엔 찬바람을 막고 여름엔 통풍이 가능하다.
집 안은 둘로 분리해 서너 명의 가족이 따로 잠 잘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여전히 ‘집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한국 후원회원들의 표정. 한국 카리타스 고정현(스텔라)씨가 입을 열었다.
“초라해 보일지 모르지만 가난한 이들에게는 어떤 곳보다도 훌륭한 집입니다. 환율이 오르고 자재와 인건비도 상승해 비용이 늘었지만 우리 돈 100만원이면 가난한 이들에게 이런 집 한 채를 지어줄 수 있습니다.”
다른 마을로 떠날 시간. 이창준 신부(한국 카리타스 총무)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난 비비쟌씨가 일행의 손을 다시 한 번 쥐었다.
한 시간 넘게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방글라데시 소수민족인 산탈(Santal)족 마을. 여섯 채의 집이 한국 카리타스의 도움으로 지어졌다. 슈밋 뚜두씨. 딸만 넷이다. 남의 논에서 하루벌이 일을 하는 남편의 하루 수입은 100다카(한화 약 2천원). 외국인이 주로 드나드는 식당의 볶음밥 가격이 150다카임을 감안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일당이다. 그나마 일이 매일 있는 것도 아니다. 둘째와 셋째 딸은 먼 도시로 나가 일을 한다고 했다. 성인이 아닐 텐데 어떻게 일을 할 수 있냐고 물었지만 그저 웃기만 할 뿐.
방글라데시 카리타스 직원이 귀띔한다.
“너무 가난해서 키울 수가 없으니 도시로 보낸 겁니다. 두 딸은 어느 부잣집에서 노예처럼 일하고 있을 겁니다. 엄연히 불법이지만 저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죠.”
나머지 두 딸도 학교를 다니다가 포기했다. 너무 멀어서라고 했지만 큰 딸은 아픈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을 해야 한다. 막내는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 언니를 돕고 있다.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며 더부살이를 하던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들에게 지난 해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방글라데시 카리타스가 집을 마련해줬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이름 모를 은인들이 도와준 것이라고 했다.
“내 집에 내가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이들에게는 어떤 것보다도 큰 기쁨입니다. 질긴 가난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는 용기도 이 집이 있기에 키워나갈 수 있을 겁니다.”
설명을 마친 디나즈푸르 지역 카리타스 책임자 산투스(Santus)씨가 해가 지기 전 길을 떠나야 한다고 재촉한다. 이 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집을 나서는 길. 열대여섯 정도 됐을까. 내내 웃음 짓던 큰 딸 마리훔의 소망이 궁금했다.
“동생들이 돌아와 함께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열심히 일해서 우리 가족의 땅을 사고 농사지으며 살고 싶어요.”
너무나 소박한 소망. ‘부자 될래요’ ‘도시로 나가고 싶어요’라는 우리 방식에 익숙한 답을 내심 기대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진다.
◆‘빈곤모자가정 주택건축사업’은?
한국 카리타스의 방글라데시 집중 지원 사업으로 지난 5년간 비비쟌이나 슈밋물무씨 등 방글라데시 7개 지역(다카, 마이멘싱, 디나즈푸르, 라자히, 쿨나, 치타공, 바리살)에 사는 가장 가난한 1,245가정이 새 집을 얻었다. 방글라데시 카리타스를 사업 수행기구로 한 이번 사업을 위해 한국 카리타스는 5년간 43만4608달러(한화 약 4억4천여만원)를 지원했다. 한국 교회 해외원조주일 헌금과 한국 카리타스 후원회원들의 정성으로 마련된 이 지원금으로 현지에서는 2004년~2006년 매년 350채의 집이 지어졌으며, 2007년에는 195채가 건축됐다. 아울러 올 6월 사업이 마무리되는 2008년 사업의 경우 총 16만1800달러의 지원금으로 200채의 집이 이미 건축됐거나 한창 지어지고 있는 중이다. 2008년 사업 주택의 경우 현지 주민들의 요청을 적극 수용해 면적을 넓히고 현관복도도 마련하는 등 과거 주택에 비해 대폭 개선됐다.
주택 수혜 대상은 가난한 이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들. 남편을 잃은 여성이나 소수민족의 경우 사회 전반에 만연한 차별로 주거형편이 몹시 열악하다. 따라서 이번 사업은 도움이 가장 절실한 이들에게 안전한 보금자리를 전해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주택 소유를 통해 안정된 소득을 적게나마 꾸준히 얻을 수 있고 자녀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도움을 준 것도 큰 소득이다.
하지만 여전히 가난과 차별로 움막 같은 곳에서 지내는 방글라데시 주민들은 천여만 명에 달한다. 한국 교회의 도움으로 5년 1245채의 집이 작은 희망을 전했지만 아직도 변변한 집 한 채 없이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는 이들은 그곳에 아직 많다.
※후원문의 : 02-2279-9204 한국 카리타스(www.caritas.or.kr)
※후원계좌 : 우리은행 064-182742-01-101, 농협 170383-51-048420 (사)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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