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구 보좌주교 공식 발표 1주일 전. 대전가톨릭대 총장 김종수‘신부’는 서울 궁정동 주한 교황대사관에 있었다.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가 김 신부를 불러 주교 임명 소식을 미리 알린 것. 교황 대사관에서 부른다는 말을 들은 후 ‘무거운 직책이 주어질지도 모르겠다’고 짐작은 했지만, 막상 교황대사로부터 주교 임명 소식을 듣자 김 ‘주교’는 크게 당황했다. 이마에 땀까지 날 정도였다.
김 주교는 이렇다. 주교 임명 소식을 듣고 땀을 흘릴 정도로 스스로의 소명에 민감하다. 주위 사람들은 그런 김 주교를 두고 겸손한 인품과 학식, 지혜, 봉사에 대한 의지,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을 두루 갖춘 참 목자라고 말한다. 그 될성부른 떡잎의 뿌리는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주교는 1956년 2월 8일 대전에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사랑과 평화 가득안고 자라며 어린 시절부터 학업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김 주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 입학한다. 하지만 에디슨의 격언처럼 그의 공부에 대한 재능은 타고난 것이라고 보다는 노력에 의한 것이 더 크다. 지금도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연구에 매달릴 정도로 학업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김 주교 스스로도 “밤새워 책을 읽어도 잠이 모자라지 않습니다. 밤이 되어서 잠을 자는 것이지, 만약 밤이 오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책을 읽을 것입니다”라고 종종 말한다. 사제가 된 후, 로마 유학시절에도 다른 나라 사제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공부에 매달렸다. 외국 사제들이 “이렇게 공부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하면, 김 주교는 “한국에서 공부하는 식대로 했을 뿐이다. 한국에서는 모두 이렇게 공부한다”고 말했다.
‘공부벌레’ 김 주교가 사제성소의 원의를 품은 것은 공군 학사장교 복무 중이던 어느 날이었다. 성경 공부를 하다 “이것이 진정한 나의 길”이라고 깨달았다. 김 주교는 당시를 두고 “성경을 읽고 기도만 하면, 밥 안 먹어도 될 것 같았다”고 회고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선열위식(禪悅爲食), 즉 하늘에 제사 지내는 기쁨으로 음식을 삼는다는 경지다.
김 주교는 군 제대 직후인 1984년 가톨릭대에 입학,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김 주교는 뒤늦게 시작한 신학교 공부에도 무섭게 달려든다. 당시 함께 공부한 동료 사제들은 “늘 따뜻하면서도 합리적으로 사고하시는 분명한 성품”으로 기억한다.
1989년 사제품을 받고, 첫 꿈을 이룬 김 주교는 이내 또 다른 꿈에 도전했다. 진정한 학자 사제의 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한없이 공부에만 전념한 것은 아니다.
김 주교는 신앙과 학문,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엄격함’도 겸비하고 있다. 외적으로는 한없이 부드럽고 따뜻하지만 철저한 논리가 동반하지 않는 경솔함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특히 스스로에게는 항상 엄격했다. 보좌신부 시절부터, 유학생활, 교수직에 이르기까지 논리적으로 엄연히 옳지 않는 사안에는 쉽게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논산에서 보좌신부로 지내던 시절, 아버지가 대전 성모병원에 입원했을 때 일과 시간이 아닌 저녁 시간을 이용해 매일 병문안을 다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은 그런 김 주교를 참 신앙안에 머물면서도 테살로니카 교회와 코린토 교회의 어긋남을 질타하는 바오로 사도와 닮았다고 말한다.
1990년 가톨릭 교회의 심장이라는 로마로 유학,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성서학을 전공한 김 주교는 1994년 귀국한 뒤 대전가톨릭대 교수와 학생처장, 교리신학원 원장을 거쳐 2007년부터 최근까지 대전가톨릭대 총장을 역임해 왔다.
신학교 재직시절, 김 주교의 따뜻한 성품은 신학생들을 대하는 것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김 주교는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신학생들을 대했고, 이에 신학생들도 늘 감사와 존경으로 따랐다. 대전가톨릭대 총장이면서도 그의 방은 늘 신학생들에게 열려 있었다. 방을 찾는 손님들에게 손수 커피를 우려 대접하는 자상함도 지난 10년 넘게 한 번도 변하지 않는 습관이다.
유흥식 주교는 김 주교 임명 하루 뒤인 2월 11일 발표한 담화에서 “김종수 주교는 학문과 지혜는 물론 교회를 위해 봉사할 준비가 넉넉히 된 착한 목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김종수 주교의 임명이 대전교구가 하느님 마음에 들고 발전하는 은혜로운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대전교구장과 대전교구민들이 김 주교에게 거는 기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 주교가 주교 임명 발표 후 맞은 첫 아침은 대전교구 주보인 ‘루르드의 복되신 성모마리아 축일’(2월 11일)이었다. 이날 같은 아침을 맞은 대전교구민들은 그래서 김 주교의 임명을 대전교구의 축복으로 여기고 있다.
그 부담감을 김 주교는 감추지 못한다. 김 주교는 그래서 주교 임명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직분에 변화없이 사제 서품 때 정한 성구를 늘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김 주교의 사제서품 성구는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다.
■ 김종수 주교 특강 요지
김종수 주교는 2월 15일 대전가톨릭문화회관에서 교구 가정사목부 주최로 열린 ‘제1회 아버지데이’ 행사에 참석, 가정 내 아버지의 역할을 내용으로 한 영성특강을 가졌다.
주교 임명 후 처음으로 교구 신자들과 만난 김주교의 특강 내용을 요약한다.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이 되셨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딸이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내주신 것처럼, 부모님들께서 내 자식을 기를 때에 하느님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기르신다는 생각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합니다.
성경 속 하느님 아버지는 아브라함의 자식을 죽여서까지도 바치라고 했던 분이셨지만 지금의 우리에게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다만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뜻대로 자식을 바치려했던 것처럼 우리는 오늘날 하느님 뜻에 맞는 그런 자식을 키우는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가족과 함께 기도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만약 어려운 사람을 본 경험을 이야기한다면 ‘우리가 이런 어려운 사람을 봤는데 그분을 위해 함께 기도하자’고 자녀들에게 청해야 합니다. 내 자녀 역시 하느님의 자녀이며 기도를 함께 봉헌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주님의 힘을 믿고 기도의 힘을 믿는다면 하느님 질서에 따르는 사람으로 커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들에게 또 하나 당부할 것이 있습니다. 아내는 동등한 위치입니다.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아이들 앞에서는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싸울 때에는 존중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자녀들은 사람을 보는 그릇을 만들고 남에게 존중해야 하고 존중받는다는 가장 기본적인 틀을 어릴 때부터 형성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아버지는 인생의 스승님이십니다. 어릴 때부터 ‘아! 저렇게 하는 것이구나’ 하면서 보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늘 하시는 일에 자식이 우선순위셨고 자연스럽게 자식을 사랑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내를 맞아 가정을 이룰 때 이미 하느님께서는 사랑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사랑을 닮은 구체적인 능력을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사랑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자녀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기 위해서는 특별히 한국적 정서에서는 아버지의 역할이 지대합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나를 이끌어주셨고 늘 도와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아버지로서 최선의 노력을 다합시다.
사진설명
▲김종수 주교(왼쪽에서 두번째)는 공군 학사장교 복무 중 사제성소의 꿈을 갖게 됐다.
▲1989년 사제품을 받고 꿈을 이룬 김주교는 진정한 학자 사제가 되기 위한 또다른 꿈에 도전했다.
▲김종수 주교의 초등학교 1학년 때 사진. 김주뇨는 어린시절부터 학업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김종수 주교의 부모님 사진. 김주교는 1956년 2월 8일 대전에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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