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병두 서강대 총장
당신의 뜻·삶 본받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세상의 별로 다시 태어나신 김추기경님.
“서로 사랑하며 용서하라”고 하신 추기경님의 말씀에 응답이라도 하듯 명동성당에서 장례미사가 봉헌되는 그 순간, 우리는 분명 하나였음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5일 동안 추기경님을 잃은 슬픔을 삭히기에는 신자 비신자의 구별이 없었고 추기경님을 떠나보내야 하는 아쉬운 마음에 4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명동성당을 찾아 한마음으로 당신과의 작별을 아쉬워했습니다.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라는 사목지표처럼 이웃에게 나를 내어주는 삶을 한평생 살아오신 추기경님은 우리 곁에서 하느님 품으로 떠나심과 동시에 우리들에게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사랑하며 용서하라는 화두를 던져 주셨고 우리들 모두의 마음속에 뜨거운 사랑의 불씨를 하나씩 지펴 주시고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사랑하고 존경하는 추기경님.
추기경님께서 지나온 삶을 통해 보여주신 따뜻한 정과 사랑, 시대에 맞는 가르침과 용기는 시간이 지나갈수록 우리들의 가슴속에 더욱 선명하게 자리 잡아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당신을 찾아뵈올 때 마다 불편하신 몸 임에도 불구하고 늘 자상한 모습으로 율리안나의 건강을 물어보시고는 서강대학교에 대해 물어보시면서 강복을 주시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저의 서강대 총장 취임식에서 축하의 말씀을 해주시기 위해 성모병원에 입원을 하시면서 몸을 추스르시기까지 하신 그 사랑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저뿐만이 아니라 추기경님을 찾았던 모든 사람들에게 그에 맞는 합당한 사랑과 관심을 보여 주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신을 떠나보내고 남은 자들의 가슴속이 이처럼 허전한 것도 당신께서 채워주셨던 그 사랑의 빛깔이 그 만큼 진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남은 건 저희들이 추기경님께서 주신 사랑에 보답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어려운 이 시기에 우리를 지탱해주고 울타리가 되어주셨던 큰 어른을 보내드리면서 당신 뜻에 따라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찾도록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할수록 아쉽고 애통한 마음 그지없습니다만 당신께서 그토록 의지하셨던 주님품으로 가셨기에 위안을 얻으며 부디 하느님품안에서 우리들을 살펴주시어 이 나라가 당신의 장례기간동안 보여주었던 그 모습처럼 서로 한마음으로 양보하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정치가가 아니면서도 그 어느 정치인보다 더 영향력 있는 분이셨고 노동운동가가 아니면서도 누구보다 그들의 고통과 고민을 잘 알고 계시면서 그들 편에 서 주셨던 추기경님! 이 땅에 김추기경님을 주신 것은 우리나라를 위한 하느님의 특별한 축복이었습니다.
이제 추기경님을 잃고 슬픔에 빠진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당신께서 사셨던 용기 있는 삶을 본받고 따름으로서 추기경께서 꿈꾸셨던 세상을 우리들이 앞당기는 일이라 생각 합니다.
저희에게 베풀어주신 그 사랑, 그 자상함과 배려를 늘 생각하면서 당신의 뜻을 열심히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겠습니다.
◆ 성염 전 주교황청 대사
인권신장·민주화 운동에 열정 쏟아
40만이 넘는 조문객과 평화방송에 버금가는 대중매체의 방영, 가톨릭신문을 연상시키는 일간신문의 보도는 김수환 추기경님이 국민으로부터 받아온 존경과 신뢰를 웅변적으로 드러냈으며, 저희가 믿는 종교 신앙에 한결 자긍심을 돋아 주었습니다.
2005년 4월,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에 400만명의 청년들이 로마로 운집한 현상에 세계 언론이 놀랐습니다. 추기경님도 기억하시겠지만, 그 당시 사회학자들의 해석은 이러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두 도성’ 이론이 유럽인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는데,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혼자 남은 슈퍼파워가 전 세계에 불의한 전쟁을 일삼자 유럽의 지성들은 바티칸 언덕으로 눈을 돌리면서 ‘하느님의 도성’의 표상을 찾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네 위대한 목자 한 분의 용단 있는 예언자 직분이, 지난 40년간 군부독재에 맞서 키워온 진보세력의 인권신장과 민주화의 노력을 추기경님께 수렴시킬 만큼, 국민에게 크나큰 감동으로 기억되었다는 현실은 우리 국민이 지금 무엇을 찾아 어디로 시선을 돌리고 있는지 시사하는 듯합니다.
오로지 ‘경제성장’ 하나를 기치로 탄생한 정권에 기대던 국민의 꿈이 미국발 경제위기로 무참히 짓밟히고 주가폭락과 기업도산, 청년들의 취업난과 가장들의 대량실직,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로 이어지면서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는 주님 말씀이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사랑”을 역설해 오신 추기경님의 음성이 되울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추기경님이 사랑하시던 젊은이들 가운데 일부가 표명한 아쉬움에는 진중권씨가 나름대로 답변하였습니다. 소위 ‘5.18 광주사태’에 대한 기억이든 ‘사제단’에 대한 기억이든 남북대화나 보안법을 두고 안타까워했던 이들에게, 추기경님의 이상주의는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우러난 인간 연민이었지 이데올로기는 아니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강론 시작 3분이면 모든 청중을 빨아들이던 추기경님의 음성에 담겼던 ‘사회교리’는, 안경 너머로 비치던 무구한 미소와, 또 언론들이 요새 지어낸 추기경님의 ‘바보 정신’과 더불어, 이 시점에 한국 가톨릭교회와 저희 평신도가 걸어갈 좌표라고 느껴집니다. 주님의 안전에서 저희와 이 겨레를 이끌어 주시기를 빕니다.
◆ 이관진 환주복지재단 이사장
타인의 아픔까지 사랑한 자상한 아버지
영원히 우리 곁에 계실 것만 같았던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기어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분의 따스한 웃음과 함께하는 이들의 아픔까지 어루만져주시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된 아쉬움에 단지 먼저 주님께 보내드린 것임에도 큰 슬픔에 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임종하시기 직전까지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이들을 위로하고자 안간힘을 쓰시던 추기경님을 보면서 목숨이 다할 때까지 목자의 사랑으로 자신을 바치시는 그분의 간절한 뜻을 볼 수 있었습니다. 추기경님은 기력이 다해 한 마디 한 마디를 잇기 힘든 가운데서도 몸에 밴 타인에 대한 배려, 다 태우지 못하고 당신 몸 어딘가에 남아있는 사랑을 사르기 위해 애쓰셨습니다. 그렇기에 먼저 떠난 보낸 아픔이 더욱 시리게 다가옵니다.
추기경님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먼저 다가가 위로를 전하고 용기를 북돋워주신 자상한 아버지였습니다. 그분의 사랑 넘치는 말씀과 용기있는 행동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을 뿐 아니라 그 자체로 희망이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나 가난한 이들이 아파할 때 자신의 일처럼 함께 아파하시고 보듬기 위해 고뇌하시던 모습은 모든 이의 벗이 되어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떠올리기에 부족함이 없으셨습니다. 그분의 그러한 삶이 빚어낸 사랑의 메시지는 지금도 우리들 귀에 생생하게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인간적으로 감내하기 힘든 현실 속에서도 지침 없이 그리스도를 갈망하고 오히려 어려움 가운데서 주님의 뜻을 찾으시던 추기경님의 모습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향한 걸음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을 웅변하시는 듯했습니다. 추기경님은 이러한 당신 모습을 통해 지금도 신앙의 힘으로 진리를 찾는 데 절대로 지치지 말라고 격려하시는 듯합니다.
이제 우리는 그분을 통해 받은 감동, 참된 기쁨과 참 생명을 향한 열정을 본받아 그리스도를 찾고 살아가는 길에 더욱 힘차게 나서야 할 것입니다.
“주님, 당신의 자비에 김수환 추기경님의 영혼을 맡겨 드립니다.”
◆ 권경수 한국가톨릭여성협의회 회장
진정 가난하게 사신 이 시대 예언자
칼날 같은 정의감으로, 봄날의 포근함 같은 따뜻한 사랑으로 나라와 겨레를 지켜오신 큰 별, 추기경님 당신의 크심을 감히 어떻게 그려낼 수 있을까요.
한 생을 오롯이 주님을 사랑하시고 주님과 생명 나눔의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가시느라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어오신 당신의 모습은 광야에서 홀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존경하는 추기경님, 당신께서는 참으로 용기있는 도전자이셨습니다. 일찍이 추기경의 직책을 맡으시고 교회의 수장으로 이 나라의 정치적 혼란에 맞서야 하셨을 때 당시 대통령에게 결연한 의지로 “정치·경제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인간 기본권이 유린당하거나 정의에 어긋나는 일이었으면 ‘아니오’라고 말해야 합니다. 인간은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된 존엄한 존재입니다. 이처럼 존엄한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 또 충분한 행복을 누리도록 해 주는 것이 정치원리라고 생각합니다”고 하시면서 날카로운 논리로 대응하셨습니다. 이렇듯 강한 자에게 강하신 추기경님, 그러나 약한 자에게는 더없이 약하신 당신께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외롭고 슬퍼하는 고아들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사랑의 아버지셨습니다. 사랑하는 추기경님, 당신께서는 도덕성이 퇴폐하고 가치관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 시대의 사회현상에 크게 걱정하셨습니다. 더욱이 진정성이 결여되고 있는 사회의 병폐를 보시고는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존경하는 추기경님, 진리와 정의 그리고 모든 것의 원천인 사랑을 소중하게 간직하신 당신은 이 땅의 큰 어른이십니다. 넓은 혜안으로 세상을 향해 문을 여시고 소통을 하시면서 가야할 길과 가지 않아야 할 길을 명확히 제시해 주셨습니다. 당신께서는 당신의 표어 ‘PRO VOBIS ET MULTIS’(여러분과 모든 이를 위하여)’처럼 오로지 모든 사람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시고 진정 가난하게 사신 이 시대의 예언자셨습니다. 참으로 멋있는 추기경님, 그동안 고단하셨던 짐을 다 벗으시고 그토록 사랑하신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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