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4년 만이다. 비노이(Binoy Luke Rodrigues)는 ‘Oh! Old Friend’라고 외치며 반갑게 얼싸안았다. 2005년 처음 방글라데시를 찾았을 때 만난 비노이는 방글라데시 카리타스에 갓 들어온 신입직원이었다. 2004년 한국 교회 지원으로 마련된 ‘장애인 상담자 육성 프로그램(장애인 교육 이론, 장애 분야별 실기와 실습 교육)’을 수료한 그는 곧바로 장애인들을 돕는 일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교사라는 안정된 직장을 내던지고 이 일을 택한 것은 오로지 장애인을 위해 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체장애인이었고 아내도 한 쪽 눈이 보이지 않는 장애인. 때문에 방글라데시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고달픈 일인지 그는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한국 교회 덕분에 장애인들과 함께 일하게 됐다고 그때 그랬지’라며 농반 진담 반 예전 인터뷰 기억을 떠올리자 쑥스러운지 어깨를 툭 친다. 비노이와 함께 길을 나섰다. 한국 카리타스의 ‘장애인통합지원사업’ 수혜자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디나즈푸르 빈민촌 칸푸르 마을. 모스타파 알리씨가 한국 방문단을 맞이했다. 올해 45살인 그는 18년 전 심한 열병을 앓은 후 전신에 장애가 왔다. 한 쪽 팔만 온전하다. 일을 할 수 없어 길거리 구걸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다. 하루 한 끼 때우기도 힘들었다.
“방글라데시 카리타스에서 특별히 제작한 3륜 휠체어에요. 한국 교회 지원 중 4500다카(한화 9만원)들여 만들었습니다.”
휠체어는 한 쪽 팔로도 운전할 수 있다. 화장실 가기도 버거웠던 그에게 세 바퀴 휠체어는 마비된 두 다리와 오른팔 역할을 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값진 수단이다. 알리씨는 하루 50~100kg 비료를 시장에서 들여와 주민들에게 팔고 있다.
하루 150에서 200다카의 수입을 얻는다. 고정적인 수입 덕에 큰 아들은 학교에 보낼 수 있었다. 부인 로히마 가툴씨는 “카리타스 덕분에 옷도 사고 먹을거리도 넉넉히 얻을 수 있게 됐다”고 웃음을 지었다. 낯선 이 때문에 울음을 터트렸던 셋째아들 모리옴과 달리 둘째 랏바니는 악수를 청하며 연신 방글방글이다.
여전히 가난하다. 그래도 9만원짜리 휠체어 하나는 이 가족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폴리프로야그푸르 마을. 한국 교회 지원으로 올해부터 꾸려질 ‘장애인 자조그룹’ 준비모임이 한국 방문단 도착에 맞춰 열렸다. 20여명의 장애인과 부모들. 다양한 사연으로 장애를 얻고 어려움을 겪었지만 한국 신자들의 도움으로 재활의지를 다지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는 네 살 쿠쉬모니코 바따. 엄마 품에 안긴 바따는 평생을 깜깜한 암흑 속에서 살아야 한다. 치료가 불가능한 아이를 위해 방글라데시 카리타스는 일생생활 지원 훈련을 하고 있다. 어떤 것이 엄마의 소리고 화장실은 어떻게 가야 할지 배운다. 일곱 살이 되면 시각장애아학교에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예정이다.
다리에 장애를 갖고 있는 무차모 타테나씨. 방글라데시 카리타스로부터 6천 다카(한화 1만2천원)를 생계지원비로 받아 밴(Ban, 자전거 뒤에 짐칸을 연결한 운송수단)을 샀다. 직접 밴을 운전할 수 없는 그녀는 친척에게 빌려주고 하루 20다카(400원)의 수입을 얻고 있다.
왼쪽 다리에 장애를 갖고 있는 초등학교 3학년 하비불 이슬람. 치료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신발을 사는 데 도움을 받았다. 병원을 수소문한 비노이 덕분에 올해 수술을 받을 수 있단다. 바따의 일상생활 지원훈련비, 무차모씨의 밴 구입, 하비불 이슬람의 신발. 모두 한국 교회 덕분이다.
그림자도 있다. 두 마을에서 모임에 참석한 장애인이 총 20여명. 마을 주민이 500여명임을 감안하면 장애인 수가 너무 많다. 가난으로 인한 질병, 자연재해, 열악한 교통 여건 등 이루 셀 수 없는 많은 이유로 방글라데시 장애 인구는 갈수록 늘고 있다.
한국에서 사람들이 왔다는 소식에 한 사람이 아기를 안고 찾았다. 아기의 왼쪽 발은 눈으로 보기에도 심하게 휘어 있었다. 태어날 때 이미 장애를 갖고 있었지만 치료도 못해보고 있다. 큰 병원에 가야 하는데 돈이 없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 너무 많아. 장애인 모두를 돕고 싶지만 이렇게 되돌려 보내야 할 때는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 잠도 제대로 못자.”
마을을 떠나오며 버스 앞자리에 앉은 비노이가 한숨을 쉰다. 그의 어깨가 무겁다.
■‘장애인통합지원사업’은?
한국 카리타스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방글라데시 장애인을 돕기 위해 5년간 미화 163,300달러를 사업수행기구인 방글라데시 카리타스에 지원했다. 1단계(2004년~2006년) ‘장애인 시설 지원 및 복지사업’을 통해 장애인의 욕구와 권리에 보다 중심을 둔 사업계획의 필요성을 확인한 한국 카리타스는 2007년부터 현재까지 2단계 ‘장애인통합지원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2단계 사업은 정규교육기관 교사와 학생 대상 장애인인식 개선 세미나 개최, 장애 관련 기념일 행사, 장애인 자조그룹 활성화, 장애인 가정 방문 심리치료, 장애인 보장구 전달과 생계 지원 등으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방글라데시 카리타스에 따르면 한국 교회 지원으로 이뤄진 장애인지원을 통해 장애인들에 대한 지역사회 주민들의 인식이 한층 개선됐으며 보장구와 학비지원 등 직접지원으로 장애인들의 삶의 질도 높아졌다.
집중지원사업의 하나인 주택건축사업에 비해 지원 효과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카리타스의 장애인통합지원사업은 가난과 더불어 장애라는 고통을 더불어 겪고 있는 이들이 자립의 꿈을 키우고 서서히 생활수준을 향상시켜 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방글라데시 전체 인구의 약 10%, 1400만명 정도가 장애인이며 이중 70%는 차별과 가난으로 교육을 받지 못한 문맹이다. 방글라데시 장애인구는 약 25만 명씩 증가하고 있지만 장애인을 위한 정부차원의 복지활동은 전무한 상태이며 방글라데시 카리타스와 같은 NGO 단체가 도움을 주고 있는 장애인은 전체 장애인의 1%에 불과하다.
한국 카리타스는 방글라데시 카리타스의 장애인통합지원사업 총 예산의 60%(1단계 사업의 경우 70%)를 책임지고 있다. 한국 카리타스의 지원이 없다면 방글라데시 장애인들이 다시 일어서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뜻이다.
※후원문의 : 02-2279-9204 한국 카리타스(www.caritas.or.kr)
※후원계좌 : 우리은행 064-182742-01-101, 농협 170383-51-048420 (사)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진설명
▲장애인 모임에 참석한 장애인들이 한국 방문단에 감사의 꽃을 전하고 있다.
▲장애인 모임에 참석한 한 장애아.
▲엄마 품에 안긴 네살 쿠쉬모니코 바따. 태어날때부터 실명인 바따는 현재 일상생활 훈련을 받고 있다.
▲한국 카리타스 지원으로 3륜 휠체어를 지원받은 모스타파 알리씨가 막내아들 모리옴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방글라데시 카리타스 직원 비노이씨가 왼쪽 발에 장애를 입은 아이를 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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