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 아피아 안티카.
로마에 들어선 나는 제일 먼저 아피아 국도(Via Appia)를 찾았다.
푸테올리에 도착한 사도가 아피아 국도를 통해 로마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도는 이제 끝도 없이 길게 뻗어있는 장대한 도로를 따라 로마로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바오로의 압송 소식을 듣고 로마 교우들은 멀리까지 마중을 나왔다. 당시 교우들이 마중 나온 곳은 로마에서 남쪽으로 65km 떨어진 아피오 광장(Forum Appii), 혹은 로마 남쪽으로 50km 떨어진 트레스 타베르네(Tres Tabernae, 세 주막)까지다.
‘길’을 상징하는 비아(Via). 그 중에서도 ‘모든 길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비아 아피아 안티카에 살포시 발을 얹는다. 로마제국의 영광이 길을 통해 전해진다.
오래 전, 길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동서를 가로지르는 유럽 전 지역과 지중해지역까지 길게 뻗어나갔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다.
천인대장에게 ‘나는 로마시민으로 태어났소’라고 말했던 사도. 사도는 죄인처럼 묶인 상태로 이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새롭게 시작된 두려움에 떨었을지도 모른다. 아피아 국도를 한 발자국씩 내딛으며 눈물짓던 로마 교우들에게 인사를 건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주님의 뜻이었다.
“용기를 내어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한다.”(사도 23, 11)
나는 갑자기 사도가 측은해졌다. 앞일을 알지 못한 채 오직 주님의 뜻이라고 따라 갔던 그 길. 나는 아피아 길 위에 깔린 매끈한 다각형의 까만 돌을 쓰다듬었다.
장대했던 도로는 이제 좁고 짧게 남아있다. 그날의 영광과 바오로 사도의 두려움도 이제 유구한 역사 위에 추억으로 자리했다. 돌 위에 새겨진 마차 바퀴자국만으로 당시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 뿐이다.
오랜 시간, 나는 아피아를 걸었던 것 같다. 주님의 뜻을 외면하지 않았기에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도. 그를 기억하며 추억하며 나 또한 일상으로 돌아가 참다운 ‘바오로 해’를 살 수 있을까.
비아 아피아 안티카 위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배운 사도의 흔적을 안고 한국에 돌아갈 것이다. 과거는 소리 없이 역사를 말해주고, 현재는 영원을 갈구했다.
로마의 해가 기울었다. 아피아 길 옆으로 우거진 나무가 길 위에 어둠을 재빠르게 드리운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어 나는 다시 로마 시내로 이동한다. 내일은 가택연금을 당했던 사도의 흔적을 추적해야 한다.
아피아 길 위를 걸어가는 한 사람이 바오로의 모습처럼 잠시 스쳤다.
사진설명
▲바오로 사도는 비아 아피아를 통해 로마로 향했다.
▲아피아 국도 길에 민들레가 피었다.
▲사도의 발자취를 느끼며.
▲비아 아피아 안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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