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의 기적’이라 불릴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김 추기경은 이제 영원한 안식에 들었지만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 바보야
큰 별이 우리 곁을 떠나가던 20일. 아침인데도 햇살 없는 하늘이 어둡고 낮다. 갑작스레 찾아온 매서운 추위와 때 아닌 짙은 황사로 가만히 서 있기조차 힘든 날씨지만 서울 명동성당 진입로까지 몰려드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늘어간다. 모두가 김추기경을 닮은 ‘바보들’이다.
새벽 6시에 집을 나섰다는 변정민(엘리사벳·서울 등촌1동본당)씨는 “장례미사가 열리는 명동성당 안에는 이미 꽉 차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추기경님과 함께 하고 싶었다”며 성당 앞 마당에 종이박스를 깔고 자리잡았다.
미사시간이 가까워오자 바보들은 점점 늘었다. 김민수(스테파노·38·수원교구 반월통고의어머니본당)씨는 함께 온 어린 아들이 키가 작아 성당 마당에 설치된 스크린을 보기 힘들어 하자 목마를 태웠다. 인파가 많아 아이 안전이 걱정되면서도 아이가 김추기경을 닮은 모습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 고맙습니다
1만명을 훌쩍 넘긴 사람들의 열기가 명동을 가득 메웠다. 지역이나 종파를 초월해 모인 사람들이지만 장례미사가 봉헌되는 두 시간 남짓되는 시간동안 어느 하나 얼굴 붉히지 않고 큰 사고도 없었다.
소설가 공지영(마리아)씨는 “추기경님이 돌아가시면서 우리 모두에게 내면의 ‘눈’을 기증하셨다”고 말했다. 또 한 일간지에 게재한 글을 통해 “그의 이름은 따스함, 그의 이름은 가난, 혹은 사랑 그리하여 그의 이름은 희망이다. 우리는 그를 보내고 그것을 얻었다”고 김추기경을 추모했다.
중증장애인 화가로 유명한 작은예수수녀회 원장 윤석인 수녀도 이날 장례미사에서 “추기경님은 인간의 마음을 보고 그 마음을 진정으로 변화하게 한 진정한 사목자”라고 회고했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대표회장 최근덕 성균관장은 “김추기경은 참다운 종교인이면서 종교간 화합을 위한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를 창립하는데 실질적인 역할을 했다”며 “자신의 종교보다 이웃종교를 더 배려했던 마음은 종교인은 물론 모든 국민이 배워야 할 귀중한 정신적 자산이다”라고 말했다.
#. 서로 사랑하세요
기다리는 사람들도 추위에 떨었지만 그보다 더 오랜 시간 밖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수백명의 봉사자들이 질서유지·교통통제·차량안내 등 성당 곳곳에서 소리없이 땀흘렸다.
질서유지를 담당한 성진각(스테파노·서울 명동본당)씨는 “추기경님의 마지막 말씀을 조금이라도 실천하는 마음에서 신자들이 안전하게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대교구 가톨릭운전기사사도회원 김순민(사베리오)씨는 “추기경님이 선종하신 16일 저녁부터 3일에 한번 쉬는 날마다 교통봉사를 해오고 있다”며 “평소같았으면 부담스러울법도 한데 추기경님 가시는 길에 조금이나마 도와드리는 것 같아 기분 좋게 봉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추기경을 추모하는 사람들의 물결은 비신자들에게도 감동으로 다가섰다.
서울역에서 장례미사 중계를 시청하던 신차숙(57·대구 달서구)씨는 “김추기경은 참으로 좋은 뜻으로 좋은 생을 보내신 훌륭한 분”이라며 “이번 계기로 서로 일치하고 단합하는 천주교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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