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관료사회에서 선생님이란 늘 어렵고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오직 김수환 추기경님만은 학생들에게 따뜻하고 부드럽게 대해주셨죠. 추기경님의 온화한 미소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미사가 있던 2월 20일. 김 추기경이 1955년 6월부터 1956년 7월까지 교장으로 재직했던 김천 성의고등학교 2회 졸업생들을 만나 그들이 추억하는 김수환 교장선생님에 대해 들어봤다.
“추기경님은 굉장히 친근감이 많은 분이셨습니다. 항상 밝은 얼굴로 학생들에게 먼저 웃어주시는 인자한 어른이셨어요.”
김천 성의고등학교 2회 동문회장인 정영호(72)씨는 34년 동안 교직에 몸담으며 추기경님이 고등학교 시절 가르치신 인성교육을 마음에 새기고 살았다고 털어놓았다.
“추기경님은 학생들의 도덕 교육을 강조하셨습니다. 당시 학교의 교훈도 ‘양심’이었어요. 무엇보다 인간 됨됨이와 예절 교육에 대해서 열의를 가지고 가르치셨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김희수(77)씨는 “추기경님께서 나는 처자식이 없으니 월급 받으면 너희들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한다”면서 “배운것을 실천하고 부모님께 꼭 효도하라고 강조하신 그 말씀이 당시 우리들에게 큰 가르침이 되었다”고 말했다.
전성우(75)씨 역시 30년간 교직에 있으면서 비록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김 추기경이 종교·사회 계층간에 벽을 없애고 화합과 사랑을 강조한 그 정신을 배우고 기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기경님께서는 참으로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보다 더 많은 눈물이 났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하루에 선을 하나씩 행하라는 말씀이 마음에 남습니다. 추기경님의 영향으로 제 인생 신조도 ‘거짓 없이 양심을 지키며 살자’라고 정해 지켜왔습니다. 제가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주신 추기경님의 은혜는 이루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홍일표(사도요한·75)씨는 “학생 때는 신자가 아니었지만 너그럽고 겸손하셨던 교장선생님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면서 “늘 추기경님으로 인해 가톨릭 신앙인인 것이 자랑스럽고 뿌듯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세례를 받고 2남 2녀의 자녀 중 장남을 사제로 봉헌한 홍일표씨는 “선종 몇일 전 추기경님을 찾아뵈려고 병실까지 알아 놓았는데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고 죄송스럽다”며 말을 흐렸다.
당시의 제자들에게 김수환 추기경은 부드러운 농촌 신사였으며 인성을 강조한 참 교육자였다. ‘앞으로도 추기경님의 말씀 가슴 깊이 새기고 살아갈 것’이라고 고백하는 그들에게서 선생님 김수환이 남긴 진실한 가르침이 전해진다. 또 계속해서 김 추기경이 걸어온 발자취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회자되고 그 사랑의 메세지가 퍼져나갈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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