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시고 그분을 닮으려고 무던히도 애쓰던 그분이 세상을 떠나셨다. 가난한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시고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서 고군분투하던 이 시대의 예언자가 우리 눈앞에서 모습을 감추셨다.
가난한 이들의 벗
김수환 추기경은 가난한 사람들의 벗이다.
동일방직 노조원들이 오물을 뒤집어쓰고 그 여공들이 옷이 벗겨진 채 끌려갈 때, 이에 분노하고 그런 만행을 저지른 사람들을 나무라시고, 노조원들을 위로하셨다.
본당에 견진성사를 주러 오셨을 때도, 청년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들어주시며 주의 깊게 만나시던 분이다.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자상하신 아버지로서, 참다운 목자로서, 벗으로서 가난한 사람들 곁에 다가가신 분이심을 모든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세상 한가운데에 있는 교회로
강화도의 한 작은 공장 노동자들이 해고되었을 때 그것을 주교회의에서 다루도록 하신 분이 김수환 추기경이시다. 그래서 김 추기경과 함께 교회는 사회와 대화하고 하느님의 생생한 말씀을 전할 수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에게 선뜻 다가가는 김 추기경을 보면서 한국 사회는 교회를 더 이상 낯선 종교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민족의 애환을 함께 하는 교회로 거듭 태어난 것은 분명하게 김 추기경 덕분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선물
사제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분이시다.
사제 수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제들을 파견하신데 전혀 인색하지 않으셨다. 필자가 서울대교구 소속 신부로서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 가난하게 살고 싶어서 김 추기경께 말씀드렸을 때, 기꺼이 허락해주신 분이다. 또 누추한 빈민촌에 조용히 찾아오셔서 대화하시고 거친 식사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함께 나누시던 분이다. 가난한 젊은 노동자들과 함께 작은 기도 모임에서 한 시간 이상 기도하시던 분이시다.
이뤄지지 못했지만 교구 신부들이 노동사제가 되려고 했을 때 한국교회에 노동사제가 탄생하기를 진정으로 바라신 분이셨다.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어루만져주시던 시대의 예언자
서슬 퍼런 유신 시대에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달려와 호소할 때, 기꺼이 만나주셨다. 아파하는 사람들의 호소에 함께 아파하면서 귀를 기울이셨다.
한국은 매우 빠른 시간 안에 경제적으로 부자 나라가 되었지만 그 부작용으로 비인간화된 사회가 되어서 신음하고 있다. 그런데 시대에 앞서서 이 문제를 미리 알아보시고 예언자로서 마음 아파하시고 기회가 닿는대로 국민들에게 알리려 목청 높이던 큰 예언자이셨다.
때로는 성직자들 사이에서 불평이 터져 나왔다. 일부 신자들도 뒤에서 수군거렸다. 국민들 사이에서 의심의 눈으로 쳐다보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이 예언자는 자신의 사명을 꿋꿋하게 수행해나갔다.
십자가를 짊어진 어린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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