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정신(pride)은 하느님 뜻에 조화되는(공명·Consonance) 삶을 살아가려는 성향들을 가로막는다. 오만은 우리 마음에 갖고 있는 이 조화의 성향들을 마구잡이식 다툼, 자기 중심적 판단을 정당하다고 고집하는 태도(Judgementalism) 등과 같은 조화롭지 않은 성향들로 대치시켜 놓는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재능의 오용도 오만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바벨탑은 인간의 오만이 넘치고 넘치는 전형을 보여준다. 오만의 결과가 무엇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 인간이 오만하면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망쳐 놓게 된다. 하느님과 인간관계는 근본적으로 의존 관계다. 오만은 그 의존관계를 뿌리채 흔들어 놓는다.
‘지금 여기’ 주위에도 이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다. 많은 정치가들은 자신들이 정치를 매우 잘 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모든 이들에게 행복한 삶을 선물 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경제계의 소위 큰 손들도 무슨 일이든지 돈으로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오만한 과학자들은 또 과학을 통해 생명까지 손대려 한다.
착각도 보통 착각이 아니다. 인간 지성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우주의 신비 그 빙산의 일각도 깨닫지 못한다. 무한(無限)한 하느님 신비에 비하면 유한(有限)한 인간 지성은 무(無)나 마찬가지다. 나 자신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어떻게 우주를 알겠다고 하는가. 어떻게 세상을 안다고 하는가. 오만함은 이러한 신비에 머리를 숙이지 않게 한다. 그러다 보니 하느님과의 의존 관계가 깨지게 되고, 스스로의 힘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의존관계가 무너지면 인간은 비참해 질 수 밖에 없다. 아기는 어머니 품속에서 진정으로 행복해 질 수 있다. 의존관계가 무너진 인간은 그래서 돈을 추구하고, 자기 만족을 추구하게 된다. 인간은 그럴 수록 더욱 더 깊은 자기 기만의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
이러한 분열과 자기기만, 오만으로 인해 인간은 초월위기(Transcendence Crisis)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초월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초월위기는 우리가 삶의 총체적 의미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초월위기 상황안에서 초월적이고 형성적이고, 영성적인 의미를 다시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지난 모든 삶을 초월의 잣대로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번 부모님께 크게 혼나고 나서 정신을 번쩍 차리는 아이의 모습과 마찬가지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우리에게 영적 성장의 단초를 제공한다. 쉽게 말하면 어떤 위기(질병, 교통사고, 다툼, 모함에 의한 상처)는 그 자체로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내가 영적으로 더 성숙할 수 있는 초월적 의미를 지닌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갑자기 시력을 잃었다고 가정해 보자. 어떤 이들은 좌절해서 삶의 의욕을 잃을 수도 있다. 당장 자살부터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영원히 앞을 보지 못한다는 좌절감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해 불평하고, 불만하고, 고통스럽다며 사실 그 자체(실명했다는 사실)를 회피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초월의 기회로 승화시켜야 하고 또 그렇게 될 수 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시력이 좋았을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전혀 다른 새로운 경지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시력을 잃은 이가 마음의 눈을 새로 뜰 수 있는 것이다. 시각 장애인들을 위해 연민의 마음을 가질수도 있고, 겉으로는 멀쩡한 것 같으나 영적인 눈(마음의 눈)을 뜨지 못하고 오만한 삶에 빠져있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반(反)형성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고, 형성적 선택을 할 수도 있다. 하느님께서 형성되도록 미리 마련해 놓으신 신비에로의 초대에 응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 초대에 응한다면 형성적 삶을 살 수 있고, 초대에 응하지 않으면 반형성적 삶을 살게 된다. 이러한 하느님의 초대에 우리가 “예!”라고 말하다면 영성적 삶으로 한발 내딛을 수 있다. 그 첫발을 내딛는 그 순간,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은총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