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강원도 고향에 있는 우리 집의 산자락에 더덕을 재배한 적이 있다. 서울의 경동시장에서 더덕씨를 샀는데 한 홉이면500∼600평에 부릴 수 있었다. 이 씨는 하도 작아서 바람에 날아갈 정도였다. 내가 예수회에서 수련을 받고 있는 동안에 더덕 씨를 뿌린지가 6년이 되어서 아버님께서 서너 가마니 정도의 더덕을 캐셨다.
한 홉에 불과했던 더덕 씨가 자라서 6년이 되니 고향의 친지들이 가끔씩 캐어 잡수시고도 서너 가마니가 넘어가는 더덕이 생산되었다는 소식은 내게 농부들의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와 비슷하게 자신의 온갖 정성을 들여 키운 자녀가 부모님의 기대와 희망 이상으로 훌륭한 인재가 되었다면, 그들의 보람과 기쁨은 얼마나 클까? 어느 부모가 자녀가 잘 성장하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며, 자녀들이 잘 될 것을 믿고 싶지 않을까?
이렇게 부모가 자녀의 미래를 믿고 희망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부모와 자녀가 서로 믿으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의문스러운 사건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가정의 불신풍조는 사회 전반에 걸친 불신을 조장한다. 그렇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가 일하는 서강대학교에서도 날이 갈수록 교수와 학생간의 인사하는 모습이 자꾸만 줄어만 간다.
나는 지난 7학기 동안 계속해온 교양필수 과목인 신학적 인간학이라는 수업시간을 통하여 교수와 학생들 사이의 신뢰를 구축하려고 노력해왔다. 이번 학기의 신학적 인간학 수업에는 200명이나 수강하고 있는데 세차례에 걸쳐서 북한산 등반을 함께 할 예정이다. 이 계획은 여러 모로 어려움도 많겠지만 스승과 학생들이 바위산에서 서로 협동하고 자연을 체험할 기회를 만드는 것이기에 최선을 다하려 한다.
학생들끼리 그리고 제자와 스승이 서로 믿는 사이를 만들기 위하여 어려운 산행을 시도하는 것이다.
나는 학생들이 신뢰를 배우도록 하기 위하여 시험을 부과하지 않는다. 시험은 학생들이 공부를 잘 하도록 격려하는 의미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 경쟁하도록 하며 스승은 서로의 답안지를 보지 못하게 감시해야 하고―그것은 불신을 조장한다―교수는 제자들이 얼마나 공부했나를 비판적인 눈으로 살피게 된다.
나는 학생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신뢰하기에 가능하면 자신들의 생각을 많이 말하도록 하려고 내가 아는 것을 말하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자유로이 토론하고 발표하게 배려한다. 처음에는 이러한 나의 의도를 잘 믿지 않던 학생들마저 자신들에게 주어진 토론을 위하여 열심히 준비한다. 이제 수업은 교수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만들어 가는 것임을 실감한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는 믿음과 불신을 동시에 안고서 살아간다. 누군가를 믿으면 희망이 생기지만 믿을 수 없으면 절망이 찾아온다. 겨자씨는 더덕씨와 비숫한 크기지만 겨자나무는 어른보다 더 크게 자란다. 믿음은 자라나서 큰 희망을 이루지만 불신은 번지면 번질수록 우리를 절망의 늪으로 빠지게 한다. 믿음과 불신의 차이는 처음에는 아주 작은 듯해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엄청난 차이를 보여준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봉나무더러 「뿌리째 뽑혀서 바다에 그대로 심어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루가 17장 6절)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믿음(신앙)이 처음부터 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주 작은 믿음이라도 잘 심으면 엄청나게 크게 자란다. 그러나 아주 작은 불신이라도 그대로 두면 믿음의 삶을 살 수 없도록 만든다. 결국 겨자씨 만한 믿음과 사소한 불신의 차이는 하늘(천국)과 땅(지옥)의 차이로 발전한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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