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있다. 그는 명문 집안에서 풍족하게 자라났다. 서울의 강남에서 이름난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S대학 재학당시에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판사가 되었다.
그는 남을 해치거나 나쁜 일에 의도적으로 가담한 기억이 없다. 열심히 성당에 다니며 장학기금, 수해의연금도 남보다 더 많이 희사했다. 예의바르고 모범적인 이판사를 존경하기를 주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또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여러모로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좋은 학교를 다니지도 못했다. 초등학교를 겨우 마치고 여러 직장을 다니다가 술집을 경영한다.
지은 죄가 많고 직업상의 어려움도 있어서 성당에는 큰 축일에 어쩌다가 참석한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아픈 것은 법과 도리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남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동네 관할 파출소에 돈을 주고 표창장을 받은 적은 있다.
이 세상에는 이렇게 밝은 곳에서 사는 이들도 있고 어두운 데에서 어렵게 사는 이들도 있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판사와 같은 삶을 살고 싶어한다. 그리고 술집을 경영하는 사람을 의롭다고 생각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오늘의 복음에도 비슷한 두 사람이 등장한다.
바리사이파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유대교 율법에 따라서 열심히 산 모범적인 사람이다. 그는 밝은 곳에서 살면서 타인의 존경을 받는 부류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그러나 세리는 스스로 하늘을 바라볼 면목도 없는 부끄러운 사람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그런데 하느님은 바리사이보다 세리를 의인으로 인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이유는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fair)하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바리사이의 삶의 출발점과 환경이 세리보다 훨씬 유리했음을 염두에 두신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서 살아온 세리에게 가산점을 주신다.
둘째 이유는 두 사람이 하느님께 대하는 태도 때문이다. 바리사이는 자기가 잘 나고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서 자기 스스로를 자랑한다. 그리고 부족한 죄인인 세리를 깔본다. 그러나 스스로 부족함을 잘 아는 세리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하느님께 정직하게 인정하고 잘못을 뉘우친다.
셋째 이유는 하느님의 가치관 때문이다. 하느님의 가치관은 인간 중심적인 가치가 아닌 모든 것을 뛰어넘는(초월적)가치관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보면 하느님의 작품이다. 바리사이가 아무리 잘난 사람이더라도 세리가 아무리 못난 사람이더라도 하느님의 입장에서 보면 도토리 키 재기에 불과한 정도의 차이다. 여기서 근본적 차이는 바리사이는 하느님의 은총과 도움이 거의 필요 없다고 느끼고 있지만, 세리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전적으로 자신을 의지한다. 이 점은 하느님의 입장에서 보면 중대한 차이점이다.
사실 바리사이도 세리도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참회의 눈물로 구한 사람은 세리뿐이었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만들거나(창조)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바리사이는 착각과 오만에 빠져서 자신의 노력과 성공을 과시하느라고 하느님과 이웃을 무시하고 있다. 더 나가서 자신의 삶이 여러 사람들의 협력과 도움에 의한 것임도 잊고 있다.
우리는 혹시 바리사이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지는 않나? 아니면 비록 세리와 비슷하게 살고 있지만 하느님의 자비에 희망을 둘 수 있다고 믿는가? 다시 질문하자면 우리의 희망은 자기 자신의 노력 뿐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인가? 즉 나는 나를 믿는가? 아니면 하느님을 믿는가?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여러분은 자신의 노력과 성공보다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희망을 두세요. 그것이 기쁜 소식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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