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인 외교관으로 보다 왕성한 창작력으로 수십권의 시집과 소설집에 희곡집마저 두루 펴낸 문인으로 더 알려진 이동진 (비오·56·서울 신림동본당) 전 외교통상부 본부대사.
지난해를 끝으로 31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마감하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온 이 전 대사에게 사순절은 일상의 연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 담담함마저 풍겼다.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시대가 던지는 소리에 깨어있으며 그 소리에 맞는 삶을 새기고 실천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시기라 생각됩니다』그가 말하는 사순절은 시대의 징표에 더욱 민감해지는 시기와 다름 아닌 듯했다. 이런 사순절을 그는 「마음의 사순절」이라 불렀다.
『절제나 금욕과 같은 실천도 좋지만 마음 속에 품고 살아온 그리스도적인 삶의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기로 자리잡았으면 합니다』사순 시기에 더욱 강조되는 성찰과 회개, 묵상 등은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이 돼야지 어느 특별한 시기에만 국한될 것이 아니라고 밝히는 이 전 대사의 사순절은 너무 평범하기까지 하다. 명동성당 등 멀지 않은 사적지를 찾아 조용히 홀로 묵상하는 시간을 자주 갖는다는 것이 좀 특별하다면 특별하다고 할까.
이런 그이기에 유별난 사순의 추억이 없는 게 당연한지 몰랐다. 『그 때는 특별히 사순절을 따로 지내야 될 이유가 없었지요. 하루하루가 기도였으니까요』네 살 나던 해 6·25로 황해도에서 대구로 피난 온 그의 가족에게 삶 자체가 사순절과 다름없었다고 회고하는 그는 그런 삶 가운데서도 늘 「희생과 봉사」가 생활의 화두였다고 밝힌다. 그런 그에게 특별히 한 시기에 성찰과 희생, 봉사가 화두로 던져지는 것 자체가 여전히 생소하기만 하다.
소신학교와 대신학교를 다니던 열띤 시절을 거쳐 공직에 몸담으며 해외를 오가는 나그네로 이어진 그의 삶은 특별히 전례시기를 염두에 두고 산 것이었다기 보다는 삶이 전례 속에 녹아 있었던 셈이다. 숱한 나라의 사순 풍습을 지켜봐 온 그는 특별한 음식이나 행사를 통해 의미를 찾기 보다 각자가 지닌 「하느님이 주신 재능」을 발견하고 나누는 시기가 사순 시기였음을 깨닫게 된다고 털어놓는다.
『필리핀의 고뇌 어린 사순절 풍습이 우리에게 필요 없듯 자신 에게 의미있는 사순절을 찾아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길이 하느님께로 다가서는 길이기도 하겠지요』나름의 사순 문화를 갖지 못하는 현실을 하느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땅에 묻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하는 이 전 대사. 한국적 가톨릭문화가 없다는 그의 지적은 뼈아픈 반성의 소리로도 들렸다.
『모든 사람이 한 가지 방법만으로 하느님나라에 이를 순 없습니다. 이 가운데 서로 다른 삶의 방식에 맞는 나름의 사순절 풍습을 갖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들의 부족함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요?』그때 그때 하느님께서 주시는 달란트를 발견하고 이를 나누는 삶을 반성할 수 있도록 이끄는 때가 사순 시기였으면 하는 바람을 밝히는 그는 사순절을 통해 저마다의 「의미 찾기」에 나서길 당부했다.
『어쩌면 사순절은 나 하나만을 위해 살아온 삶을 회의하고 공동체적 삶으로 새롭게 나는 시기가 아닐까 합니다』의미 찾기를 통해 자신은 작아지고 공동체가 커지는 삶, 사순 시기가 이를 묵상하는 때임을 그는 담담히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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