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한낮에는 아파트 마당이 조용하다. 미끄럼틀엔 햇빛이 혼자 부딪히며 거울처럼 빛나고, 노간주나무에 달린 열매가 수염처럼 늘어지는 한낮.
아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잠깐 달콤하게 낮잠을 자고 있나? 엄마를 졸라대어 가까운 풀장에라도 간 것일까? 할 일 없어진 사람처럼 나는 심심해진다. 『물 좋은 오징어 왔어요. 나와 보세요』
용달차에서 녹음해서 들려주는 아저씨 목소리에 섞여 아이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오후의 아파트 놀이터. 드륵 드르륵 롤러 블레이드 타는 소리. 『아무개야!』 저들끼리 부르는 소리. 나는 밖으로 나가고픈 충동을 느낀다. 『안녕하세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남자아이의 인사. 『안녕하세요?』 민소매 T셔츠 밖으로 나온 팔뚝이 까매진 여자아이의 인사. 밝고 귀여운 목소리, 때로는 용감하고 엉뚱한 아이들.
아이들은 그들이 아이들이기 때문에, 이쁘고 귀한 존재라는 걸 모르고 있기에 더 사랑스러운 것이다. 내가 이 어줍잖은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예사로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어여쁨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신창원이 딱 드러붙는 현란한 셔츠를 입고 방송마다 신문마다 요란하게 등장했을 때, 그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지는지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저는요, 일기 쓰기를 잘하지 못하는데요. 신창원은 도망다니면서도 일기를 썼다는 점은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신창원이가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나빠진 것 같아요』
아이들의 눈은 안경을 쓰지 않아도 이렇게 정확했다.
만일 『어린 게 뭘 안다고?』 하면서 나이 먹은 티를 내며 잘난 척 하거나, 『애들은 가라, 애들은』하고 소외시킨 적인 있는 어른은 반성해야 한다. 신창원이 어렸을 때 훔친 수박 때문에 소년원을 들락이고 불우한 가정환경과 사회의 냉대가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면, 그 때보다 열 배 이상 나아졌다는 지금의 형편에도 엄청난 수의 결식아동이 있다는 것을 어른들은 반성해야 한다.
부모노릇 제대로 못하고 있음에도, 세상에서 제일 이쁜 엄마로, 저를 사랑하는 아빠로 여겨주는 아이들에게 부모들은 반성해야 한다. 이 글을 쓰면서 내 어릴 때와 요즘 아이들의 차이를 꼽다보니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역시 아이들이다」라는 것에 이르게 된다. 너무 많이 비슷하고 닮기까지 한 이 세상 모두의 아이들. 가난이 싫어 가출했던 내 친구 애숙이. 언니 옷 몰래 입고 극장 구경가고 빵집에서 놀던 나름대로 용감했던 친구들.
속내는 그렇지 않음에도 가까운 이들에게 정겨운 표현보다 불평을 말하고 무언가를 요구하기에 당당했던 무뚝뚝한 말투. 고마움은 알지만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아 표현 못하고 마는 그래서 더러 받게 되는 측은한 오해까지도.
그랬다. 좋은 것, 나쁜 것. 우리는 자라면서 모두 세습하며 살아간다. 흉보면서 배우고, 후회하면서 다시 반복하는 못난 점도 내림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고 또 아이가 우리에게 오는 것이 정말 고맙다.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아이들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얼마나 가슴이 따뜻해지는지. 우리는 아이들이 있어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 있음을 잊으면 안된다.
청소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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